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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비평

학교를 혁신하고자 한다면


지난 1학기말에는 교사로써 오랜만에 행정과 잡무 부담에서 상당히 벗어나 수업연구와 담임으로서 생활지도에 매진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왜냐면 교감이 교장 임용 연수에 가서 학교에 근 한 달간 없었기 때문이다. 교감이 없으니 끝없이 잡무를 만들어내지도 않고, 지역교육청이나 외부의 쓸데없는 행정 처리 요구들을 점수때문에 우격다짐으로 다 수용하여 처리해주는 일도 적어졌고, 수업이 없는 금쪽같은 시간에 교감과 별 실효성없는 면담을 하거나 댓거리 주고받으며 수업연구 기회를 날리는 일이 없으니 수업도 훨씬 알차게 준비된 수업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학교는 학교대로 더 매끄럽게 잘 돌아갔다. 부서간 협조도 더 잘 되고 불필요한 시간낭비도 적고 이것저것 시키며 짜증나게 하는 일이 없으니 교사의 자주성이 더 빛을 발해서 알아서들 착착 할 일들을 한다. 학교 선생님들이 이구동성으로 교감이 없어지고 교장이 수업을 한다면 학교가 정말 신명이 날 것이라고 한다. 지역교육청까지 없어진다면 우리나라 학교는 아마 선진국 수준의 교육이 이루어질 것이다.

사실 교감이나 교장들이 공공연히 하는 말들 중에 '수업하기 싫어서 죽자사자 승진에 매달린다'는 말이 있다. 자신의 능력을 교육이 아니라 행정으로 발휘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비교육적 무능력자 선언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말인데, 이런 유사한 말들은 그들 사이에서 매우 자주 들을 수 있다. 성공의 기준이 교육이나 수업이 아닌데 성공지향적이 되니 그 순간 수업 연구 안하기, 행정잡무하다 수업 늦게 들어가기, 불필요한 실적주의 잡무 만들기, 위에서 내려오는 쓸데없는 행정 업무에 과잉 충성하기, 통계나 보고 조작하기, 학생이나 교사 인권 무시하기 등을 스스럼없이 자행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비교육적인 공정을 거쳐 승진한 사람들이 무려 한 학교에 교장, 교감 1명 이상, 행정실장 등 3명이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거기다 시도교육청 외에 지역교육청까지... 학교가 비교육적 말단 행정기관의 역할로 전락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이들이 벌이는 온갖 불요불급한 실적경쟁과 유치한 잡무들이 학교를 19세기 동사무소로 퇴행시키고 있다.

6년 전에 캐나다 어느 학교에 1주일 견학한 적이 있다. 교장 1명에 교감은 교무부장이 겸하고 있고 행정실장은 없이 행정실 직원(school secretary)이 한 명 있었으며 청소하는 기사가 한두 명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학교는 우리 식으로 하면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함께 다니는 매우 큰 학교 였으며, 전교생이 모였을 때 1천명 정도 되었던 것 같다. 우리의 경우 교장 1명, 교감 1명, 행정실장 외에 행정실 직원 3명 각종 기사 4-5명 등이니 많은 차이가 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교감이 수업을 전혀 하지 않는데 그들은 교감이 수업도 하고 담임까지 맡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교장이 학생지도를 전혀 하지 않는 구조인데 그들은 교장이 생활지도부장 일을 하며 전교의 문제학생들을 다 지도하기 때문에 생활지도부장이나 생활지도부가 별도로 필요하지 않다. 행정실은 뭐 더 말할 필요도 없다. 한 명의 행정요원으로 그 큰 학교가 다 커버되고 교사들이 행정잡무를 안 해도 된다는 것은 그 나라의 학교들이 얼마나 행정잡무로부터 자유로운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어떤가? 교장과 교감이 수업이나 생활지도를 전혀 하지 않는다. 수업이나 생활지도를 잘해서 승진한 것도 아니니 수업이나 생활지도와 같은 학교교육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다고 볼 수도 없다. 이런 사람들이 시간이 남아도니 거부해도 좋을 외부의 행정잡무 요구들을 무조건적 경쟁적으로 처리해준다. 본인들이야 그런 일을 좋아하고 그런 일을 하도록 되어 있으니 본인들이 다 하면 좋은데 권력이나 승진기재를 이용하여 수업에 매진해야 할 교사들에게 떠넘긴다. 남는 시간에 새로운 실적주의 보여주기식 비교육적 잡무를 만들고 또 교사들에게 강요한다. 전자결재시스템을 천문학적 예산을 들여 만들었음에도 아직도 대면결재를 요구하는 이들이 많고, 위만 바라보는 하향식 관료들 답게 잘못된 예산낭비나 비교육적인 정책들도 기를 쓰고 수행해낸다. 비싸기만 하고 실효성이 없는 고가의 전자칠판을 구매하라고 하면 구매하고 급식의 질이 떨어지든말든 교육청에서 지시하는 폐해가 많은 전자입찰을 관철하기 위해 학부모 교사들이 직접 현장을 실사하고 면밀히 검토하여 선정하는 식자재 납품 방식을 포기하도록 한다.   

진보교육감들이 대거 진출하면서 학교혁신에 대한 요구가 높고 각 교육감들도 이에 대한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혁신의 내용이 혁신학교를 지정하여 무슨 교육과정 운영이나 시설, 행사 등 눈에 띄는 내용 위주라면  그 성패를 점치는 것이 별로 어렵지 않다. 대부분의 학교에는 여전히 위와 같은 만연된 비교육적 시스템이 그대로 작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승진에 목을 매거나 야심을 가진 교장, 교감, 장학사 들이 혁신학교 연수에 떼로 몰려가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혁신의 근본도 모르는, 혁신의 대상인 자들이 혁신을 하겠다는 꼴이다. 혁신학교를 오히려 방해하지 않으면 다행일 자들이다.

나는 일반학교에서 혁신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본다. 지역교육청을 행정업무에서 벗어나 교육지원센터로 바꾸고 거기 근무하는 모든 이들이 수업 자료 관리 및 지원, 수업 연구 및 순회 발표, 연구 및 시범 수업의 전담과 모범 수업의 확산을 주 업무로 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에 부적격한 행정 업무 중심의 장학사들은 모두 행정실 직원으로 편입하거나 행정관료로 편입시켜 교육현장에 아예 발을 못 붙이도록 해야 한다. 교사 시절 엉망인 수업으로 학생들과 동료교사들의 원성이 자자했던 이들이 장학사 시험에 매달려 장학사가 되어서는 자신들의 모범 수업은 결코 보여주지 않고 현장교사들의 수업을 '장학'만 하고 다니면서 교육현장의 신명을 죽이고 냉소주의를 부추기는 것은 이제는 더이상 현실이 아닌 코메디일 뿐이어야 한다.

또한 한 학교에 교장과 교감이 있을 필요는 없다. 교감은 과감히 없애거나 교무부장이나 교사들의 신임이 높은 교사 중에서 겸임하면 될 것이다. 교장은 온갖 비리와 관련된 예산 집행 등의 행정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 교육적 감각을 잃지 않도록 수업을 주 10시간 이내로 하면서 동시에 생활지도부장의 역할을 주 업무로 하는 것이 좋겠다.

무릇 교육이 성공지향적이 되면 그것은 더이상 교육이라는 이름을 벗어던져야 한다. 교사는 자주적인 존재이며 가치지향적인 존재이다. 이들이 자기 수업과 교육활동에 매진하고 신명을 낼 수 있을 때 교육의 질이 개선되는 것이지 행정관료와 관리자들이 통계를 조작한다고 해서 교육의 질이 개선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백 수천의 연구수업이 발표되고 있지만 현장의 수업의 질이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 모든 연구수업들이 보여주기식 성공지향적 수업이거나 신명과 자주성이 빠진 외부 강제형 수업이기 때문이다. 교사가 평소 수업에 매진하면서 소신을 가지고 자신의 교육관과 철학을 관철시키는 교육의 실천을 위해 자주적으로 준비하고 연구하고 실천하고 평가하여 업데이트한다면 오늘날 이렇게까지 입시위주의 주입식 교육이 만연하진 않을 것이다. 개별 교사를 행정잡무와 교감 교장 지역교육청의 불편부당한 간섭과 강요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연구하고 신명나게 수업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교사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학생들이 받게될 준비된 올바른 교육, 신명나는 수업, 흥미롭고 즐거운 활동은 모두 뛰어난 학습 효과, 폭넓고 창의적인 경험의 축적으로 이어져 학생들의 미래 나아가 우리나라의 미래를 밝게 할 것이 자명하다. 

이런 점에서 학교의 혁신은 혁신학교라는 별도의 학교의 성공을 기다려 진행해서는 하세월이다. 성공지향적 군상들이 몰려드는 혁신학교가 많은 성공사례를 뿜어내리라는 발상도 참으로 순진하기만 하다. 또 얼마나 많은 조작과 보여주기식 실적이 난무할 것인지... 진보교육감들의 학교 혁신, 지금 쉽게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을 과감히 시도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