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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푸와 비누 없이 씻기

샴푸와 비누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물로만 씻기 시작한 지가 벌써 3개월이 되어 갑니다.
결과는 정말 만족스럽구요, 누구에게나 강력 추천하고 싶습니다.

경과는 이랬습니다.
고혈압약을 끊기 위해 1년 전에 시작한 현미채식과 함께 매일 출근 전 헬쓰장에서 아침 운동을 하게 되었는데요, 땀흘리고 샤워할 때 습관대로 비누로 닦아내다보니 피부가 너무 건조해지고 아토피가 생기는 것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목욕하던 것이 갑작스럽게 매일 샤워하게 되어서 생기는 현상인 것 같았습니다. 아마 이런 이유 때문에 몸에도 화장품을 바르나 봅니다. 처음에는 가렵고 건조해진 자리에 저자극성 화장품을 좀 발라서 해결했는데요, 어느날 시간이 좀 늦어서 비누칠 없이 대충 땀만 흐르는 물에 문질러 씻어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씻는 것이 시간도 적게들고 편리해서 계속 그렇게 했더니 몸이 건조하거나 가렵지도 않고 아토피도 저절로 없어지더군요.

그래서 몇 달 전부터는 얼굴도 비누 없이 손으로만 문질러 씻었습니다. 기름기가 좀 미끈거리긴 했지만 대신 얼굴에 화장품을 바르지 않아도 되니 편리하더군요. 내친김에 오랜 기간 사용해온 탈모방지 기능성 샴푸마저 내던지고 머리도 물로만 감게 되었습니다. 머리는 더 끈적거리지만 약간 따뜻한 물에 문질러 씻고 헹군 후 깨끗한 수건으로 잘 닦아내면 떡지거나 기름으로 번뜩이지도 않았습니다.
  
물론 뽀득뽀득 닦아낸 상쾌함이 그립기도 하고, 내 머리와 얼굴에서 베어나온 기름기로 미끈거리는 기분도 처음에는 달갑지 않습니다. 화장실가서 뒤처리 않고 나온 기분같은 느낌도 들지요. 하지만 그 때만 잘 넘기면 쉽게 습관이 되더군요. 그것도 아주 남는 게 많은 좋은 습관이...

일단 비누나 샴푸를 쓰지 않게 되니 화장품까지 거의 바를 일이 없어져서 샤워, 세면, 머리감는 시간이 대폭 단축됩니다. 바쁜 아침시간에 특히 많은 도움이 되더군요. 기능성 샴푸와 저자극성 화장품에 들어가는 돈도 만만치 않았는데 지금은 이런데 비용을 전혀 들이지 않아도 되어서 좋습니다.

여드름, 각질 벗겨짐, 아토피와 같은 여러가지 피부트러블이 완전히 사라졌고요, 주변에서 얼굴이 깨끗해지고 피부가 좋아졌다고들 합니다. 머리가 많이 빠져서 소갈머리가 휑하게 들여다 보였는데요, 지금은 그리 휑하지는 않습니다. 머리카락이 두꺼워지고 빠지는 머리가 적어진 것 때문이겠지요. 아내가 자세히 들여다 보더니 새로 나기 시작하는 것들도 많다고 신기해 합니다.

무엇보다도 물 절약, 수질오염 방지 등 지속가능한 친환경적 생활을 하게 된 것이 좋습니다. 사실 이런 생활을 실천하고 싶어도 당장 자신의 이미지가 나빠질까봐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부가 보기 싫게 될까봐, 몸에서 냄새가 날까봐, 대머리가 될까봐, 비듬이 날릴까봐, 개기름이 번쩍일까봐 등등의 걱정근심들이죠. 이런 근심걱정에 기대어(또는 그것들을 과도하게 부풀리며) 온갖 세제와 화장품 사업자들은 배를 불리고 있죠. 대도시 중심으로 생활하면서 만남과 교류가 넓은 현대인에게는 비누, 샴푸와 화장품들 없이 생활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비누와 샴푸와 화장품을 한꺼번에 끊으니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되네요. 피부 트러블이 오히려 없어지고 머리도 덜 빠지고 코를 찌르는 화장품 냄새나 비누 냄새로 코를 마비시키며 살지 않아서 좋습니다. 가끔 아이들이나 아내가 가까이 오면 비누, 샴푸, 화장품 냄새가 매우 역하게 느껴지곤 합니다. 그렇다고 비듬이나 개기름도 없으니 굉장히 성공적인 것은 확실하네요.

사실 인류가 샴푸와 비누를 쓴 역사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수만년 동안 인류는 이런 것들 없이도 아무 문제없이 잘 살아왔지요. 얼굴에 흐르는 기름은 피부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고, 몸에서 나는 냄새도 땀흘려 일하는 사람의 우성을 드러내는 짝짓기 판단 근거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인류는 자신의 몸을 과도하게 벗겨내고 긁어낸 다음 벗겨낸 피부를 보호한답시고 온갖 검증되지 않은 발암성 화학물질로 버무려진 화장품으로 코팅하기 시작합니다. 만성적 피부질환의 창궐, 과도한 수질 오염 등 지속가능하지 못한 생활의 시작이죠.

'기적의 사과'는 농약이나 비료, 심지어 퇴비도 넣지 않고 자연스럽게 흙을 살린 결과입니다. 온갖 미생물과 곤충이 균형을 이루어 식물이 자라기에 최적의 상태를 항상적으로 유지하는 지속가능한 상태의 흙이 된 것입니다. 10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비누, 샴푸, 화장품에 길들여진 우리 피부가 이런 인공적인 공업용품들 없이도 지속가능하도록 온전히 살아나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제가 해보니 다행히 그리 오래 걸리진 않는 것 같습니다. 불과 한두 주만 끈기있게 실천하면 얼굴에 기름기도 줄어들고 비듬이나 때와 같은 피부 각질도 덜 벗겨집니다. 살아있는 우리 피부가 균형을 잡아가는 것이죠.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도시농업이 활발해지고 흙이 살아나야 하듯이 도시인들의 씻고 가꾸는 문화도 비누, 샴푸, 화장품 없이 자연스럽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코를 찌르는 비누, 샴푸, 화장품 냄새보다 자연스러운 흙냄새와 인간적인 냄새를 더 좋아하고 즐길 수 있으려면 한두 사람의 실천으로는 불가능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