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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비평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발표에서 주목해야 할 것


작년 10월에 실시한 초6, 중3, 고1에 대한 성취도 결과가 발표되었다. 결과 자체를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분석한 내용이 없다보니(물론 가능하지도 않지만), 교과부의 무리한 해석이 오히려 코믹하게 느껴진다. 그중에 압권은 교과부장관의 평준화 폐해가 검증되었다는 취지의 발언이 아닌가 싶다.

몇 가지 주목하고 싶은 것을 살펴보면, 우선 이번 성취도 평가로는 결코 성취도가 떨어졌다거나 성적이 낮아졌다거나 하는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는 점이다. 전혀 다른 연령대의 학생들을 다른 평가문항, 다른 난이도, 다른 내용으로 1회 평가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상호 비교나 분석 자체가 불가능하다. 비슷한 점수가 나오는 신뢰할만한 평가문항으로 오랜 기간 누적 평가를 한 결과를 매우 객관적이고 장기적으로 분석해서 내도 발표는 항상 조심스럽게 해야 하는 것이 온갖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복잡하게 작용하는 교육을 책임지는 공신력있는 기관의 태도일 것이다.

둘째, 시험에 임하는 태도나 분위기가 연령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초등학교 6학년의 경우에는 아직은 자아가 확고하지 않으며 학교나 교사의 지시나 요구에 순응적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시험에 목매다는 아이들과 시험에 자포자기하거나 거부반응을 보이는 학생들이 늘어난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학교나 교사의 영향력이 적어지고 자주적인 판단이나 독자적인 행동을 하고자 한다. 시험보는 것이 싫어서 그냥 한 줄로 죽 긋고 자는 아이들은 학년이 높을수록 많아진다. 이건 어쩌면 그 아이들의 매우 현명한 판단일수도 있다. 고학년일수록 자신은 학교의 공부가 맞지 않고 그것으로 승부를 걸 처지가 아니라는 자각을 하게 된 것일 가능성이 큰 것이다. 사실 고등학교 학습내용이 얼마나 실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가? 오히려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키워나가는 쪽으로 집중해도 먹고살까말까한 상황에 처한 것이 이들이다. 아울러 초등학교와 달리 중고등학교에서는 가정에서의 통제도 잘 먹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10월에 내신 성적에 들어가지도 않고 상급학교 입시에도 바쁜 학생들이 무슨 힘이 넘쳐서 일제고사를 열심히 볼 것인가!

세째, 학습 누적량이 많을수록 동급생간의 학력격차가 벌어지는 것은 아주 당연한 현상일 뿐 성취도 저하와는 무관하다. 이번 성취도 평가가 이점을 과학적으로 고려하여 출제하고 기준을 잡아 평가를 했을까? 이 자체가 객관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네째, 초등학생들은 입시 위주의 교육을 전적으로 받고 있는 아이들이 아니고 주로 체험, 조작, 통합, 창의적인 전인교육 위주의 교육을 받고 있는 반면, 고등학교로 갈수록 입시위주의 교육에 포위된다. 또한 초등학교는 완전 평준화, 중학교는 거의 평준화, 고등학교는 반쪽 평준화인 상황이다. 그렇다면 입시 위주 교육의 실패, 비평준화의 폐해가 선언되는 것이 오히려 정확한 진단이 아닐까?

다섯째, 잘 사는 지역은 점수가 높고 못 사는 지역은 점수가 낮았다. 빈부격차가 학력격차로 나타나는 우리 사회의 원시성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교과부가 희희낙낙할 일이 아니라 깜짝 놀라서 이 병리적 현상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사과하고 이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여섯째,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은 이유들로 해서 이번 시험은 결국 사교육의 수혜정도를 평가한 것이기 때문에 성취도평가의 공교육적 의미는 이미 자체로 망실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교육의 변종인 방과후교육을 공교육인양 끌어들여 그것을 정당화하는 것은 공교육의 최후 지키미여야 할 교과부의 바른 태도가 아니다. 학원과 학교의 근본 차이를 망각하고 학원을 학교로 끌어들이면 그것이 공교육이 되는 것인가? 이 얼마나 천박한 교육관인가!

일곱째, 우리 교육의 나아갈 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부족하다. 극심한 입시교육을 통과한 학생들로 구성된 우리나라 대학의 경쟁력이 세계 꼴찌 수준이라면 입시 위주의 교육은 폐기처분하고 보다 근본적인 수술을 단행해야 한다. 지금도 세계적으로 유래없는 입시위주의 교육에 시달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더욱 가혹한 입시 위주의 교육을 강요한다는 것은 나라를 오랜 망국으로 이끄는 짓거리라 아니할 수 없다.

여덟째, 고등학교 내신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이 수능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보다 대학 공부를 잘 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사실이다. 평준화의 폐해가 공공연하게 거론되려면 오히려 특목고나 강남 출신의 학생들이 수능을 잘 맞기 때문에 대학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야 하는데 심히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지 못하다. 이번 성취도 평가는 이런 사실을 뒤집기에는 턱없는 수준이다.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인재 몇 명이 나라를 먹여 살린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런 인재들이 창의적이고 자유롭게 성장할 기회를 거의 주지 않는다. 저들이 옹호하는 비평준화는 이미 이루어졌으며, 우리나라의 모든 학생들은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공부를 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예외없이 입시 위주의 교육을 강요당하는 것으로 완전 평준화(?)되어 있다. 이 입시 위주의 교육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경쟁력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는 주범이다. 경제와 복지에 투자될 자금이 사교육에 몰리고 있어서 이 불경기에도 사교육은 번창하기만 하며, 경쟁력 있는 인재, 대학, 기업이 별로 출현하지 않는다.

왜 우리 교육이 이러한가? 개인적인 생각은 가진자들의 천박함과 이기심 때문이라고 본다. 나라가 망하든 국민이 힘들고 학생들이 삶을 박탈당하든 자신의 자식들만 입시에서 성공하면 된다는 생각... 그것을 위해 자신들 빼고는 다 팔아먹을 수 있다는 생각...

누가 내게 다른 생각을 할 근거를 제시해 주었으면 제발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