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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비평

시험 거부의 자유와 양심에 따라 교육할 자유

초등학교 일제고사를 거부하고 체험학습을 신청한 학생들에게 체험학습을 허락한 교사, 학부모에게 양심에 따라 사실을 알리는 편지를 보낸 교사들에게 서울시교육청이 파면과 해임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몇몇 보수신문들은 이에 대해 기초적인 사실은 물론 양심조차 버린 채 부당하게 징계받은 교사들을 매도하기 바쁘다.

어떤 입장을 갖기 전에 사실에 기초해서 생각해보자.
어떤 학생이나 학부모가 초등학교는 입시 위주의 공부를 해서는 안되는 곳이기 때문에 전국적인 획일적 일제고사를 보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무리 소수라고 하더라도 막을 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되는 것이다. 일제고사보다 수백배 중요한 수학능력시험도 본인이 보기 싫다고 하면 안봐도 된다. 학교 정기고사도 마찬가지다. 이런 시험들은 개인의 성적에 그대로 들어가서 평생 기록에 남는 부분이지만 그 시험을 보기 싫다고 체험학습을 떠나거나 학교를 결석하면 그에 맞는 규정의 적용을 받아 처리하게 된다. 체험학습은 출석으로 인정받아 이전 시험의 100%을 반영하게 되며, 병결은 80%, 무단결석은 최하점의 차하점을 인정받는 식이다.

일제고사는 성적에 들어가지도 않는 것이고 교육청에서 학업성취도를 평가하기 위해 편의상 보는 시험이라고 할 수 있다. 예전에는 몇몇 표본 학교를 선정해서 그 학교에서도 일부 학급의 학생만 보는 방식이었다. 이런 방식이 더 경제적이고 덜 소모적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인데 전인교육을 지행해야 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정권이 바뀌면서 갑자기 모든 학생들을 입시위주의 교육으로 몰아가고 있는데, 그 와중에 등장한 것이 일제고사이다. 사실 이건 전 세계에 없는 망국적인 시도에 불과한 쓰레기 정책이다. 도대체 어느 나라에서 초등학교 때 한 명도 빠짐없이 획일적인 시험을 치른단 말인가? 입시 중심의 교육을 받은 결과가 바로 우리 대학의 낙후된 경쟁력임을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중고등학교도 모자라 초등학교까지 입시전쟁에 빠지게 한다는 것은 정상적인 교육관을 가진 자들이라면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비교육적인 일제고사를 거부한 것이다. 이런 몰상식한 시험을 보지 않을 자유 의지를 보인 것이다. 그것이 그렇게 두려운가? 몇 안되는 그들이 시험을 보지 않았다고 일제고사가 무산된 것도 아니다. 조금만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면 오히려 자신감을 가지고 무시하고 넘어가면 될 일이다. 그들이 무슨 법을 어겼으며 무슨 도덕적 물의를 빚었는가? 오히려 자신의 소신에 따라 자유의지를 실천한 사람들로 귀감을 삼아야 할 부분이다. 인류는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으니까...

반대로 한번 생각해보자. 갑자기 입시는 망국병이니 몰아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권이 들어섰고 당국에서 모든 시험은 금지한다고 공표했는데 일부 학부모가 시험은 필요하고 우리 아이에게는 꼭 시험을 보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학교 공부를 빼먹고 체험학습을 신청해서 사교육기관의 시험을 보았다고 해서 그들을 막을 것인가? 징계할 것인가? 체험학습 신청을 받아준 교사나 학교를 처벌할 것인가?

지금도 이런저런 이유로 체험학습을 많이 신청해서 활용한다. 특히 특목고 가는 아이들이나 그 학부모들은 이런저런 편법을 써서 체험학습을 신청하고는 비정상적인 특급 사교육을 받게한다. 교육청에서 형식적인 공문이 날아오기는 하지만 부모들이 치밀하게 짜고 와서 규정의 테두리를 지켜 신청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막을 방법이 별로 없다. 그들은 무단으로 학교를 빠지고 금지된 사교육을 받거나 소위 땡땡이를 쳐도 체험학습을 신청해서 관련 서류를 만들어오면 학교에서는 무조건 100% 출석으로 인정해 줄 수밖에 없다.

사실이 이러하기 때문에 교육청의 이번 징계는 이성을 잃은 매우 무분별한 처사다. 일제고사기간이건 아니건 체험학습은 신청하면 인정하게 되어 있다. 갑자기 생긴 일제고사가 오래전부터 시행된 체험학습을 규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체험학습을 신청했으면 규정에 따라 처리해주면 된다. 일제고사때문에 체험학습을 안받아준다는 것이 얼마나 자의적인 적용이고 얼마나 치졸한 짓이며 얼마나 교육기관으로서의 위상에 먹칠을 하는 행위인지 생각만 해도 교육을 담당하는 일원으로서 심히 부끄러워 몸둘 바를 모르겠다.

교사가 학부모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도 그렇다.
그것은 교사의 고유 권한이다. 이런 방식으로 학부모와 공개적인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은 사실은 모든 교사들의 귀감이 되어야 할 사항이며 상을 받아 마땅한 일이다. 학부모들이 무슨 바보들도 아니고 모두 판단할 능력이 있다. 그래서 대통령도 뽑았고, 그래서 현 대통령이 당선되었고 그래서 공정택이 서울시 교육감이 된 것 아닌가? 교사가 양심에 따라 편지를 보내고, 학부모는 이에 대해 양심에 따라 답장을 쓰고, 또 나중에는 서로 만나 술도 한 잔 하면서 교육에 대해 이야기도 하고, 학급 운영과 자녀들에 대해 정보도 나누고 참여 공간도 만들고, 이렇게 얼마든지 아름답게 풀어갈 수 있는 일이다. 학교 관리자나 교육감, 그리고 교육부장관이나 대통령도 이런 교육 현장의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정정당당하고 광명정대하며 공개적인 의사소통의 통로를 확장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이것을 징계라는 폭력으로 압살하려 한다. 적용은 또 얼마나 자의적이며 유아적인가? 교사의 편지를 교장 명의의 가정통신문과 슬쩍 혼동시킨 다음, 이것을 교장 허락도 없이 마치 교장 사인을 위조하여 보낸 것인양 왜곡하고 매도한다. 

어느 나라나 교사는 진보적인 경우가 많다. 그 사회의 구성원을 교육하는 사람들로서 타인을 배려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며 정의롭고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한 교육적 지향을 갖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까지 돈을 위해서는 친구고 가족이고 없다거나, 남은 죽든말든 자신만 경쟁에서 살아남으면 된다거나, 다른 사람은 다 틀렸으니 자신의 의견만 고집해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묵살하라거나, 치고받고 싸우고 전쟁을 해서라도 이익이 있으면 부당하건 하지 않건 무조건 쟁취하라고 가르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로봇처럼 그저 시키는대로 학부모들에게 일방적으로 교육당국의 정보만을 제공하는 담임교사가 좋은가 아니면 교육당국과 다른 생각이라도 공개적으로 밝히고 학부모에게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는 담임교사가 좋은가? 이것을 학부모들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획일적이고 편협한 입장에서 징계하는 것이 좋은가?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양심, 자유의지, 다양성, 창의성, 의사소통, 협동의 현대에서 획일, 아부, 편법, 경쟁, 상명하달의 기원전으로 시간이동 점프중이다. 더불어 우리 아이들의 미래도 더욱 어두워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