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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정수기를 자작하다!

아파트 이사오니 씽크대 안에 들어있던 정수기가 에넥스 언더씽크형 역삼투압 정수기였다. 아마 이 아파트가 지어졌을 때 설치된 것일테니 줄잡아 10년은 된 듯 싶다. 그때만 해도 이런 외제(?) 정수기 밖에 없었으니 값도 무지 비싸게 들여놓았을 것이다.


이전에 살던 사람은 이 아파트 전체의 정수기를 관리하는 업체에 맡겨 필터 교환이나 부품 교체 등의 관리를 하고 있었다. 값이 너무 비싸다고 생각한 나는 인터넷을 뒤져 필터를 사서 스스로 교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이트를 찾았으니 바로 Filter114(filter114.co.kr)였다. 이곳에서 친절한 안내를 받아 투명한 가격으로 성능도 좋으면서 이 정수기에 적합한 필터를 구입할 수 있었으며, 구닥다리 정수기지만 조금이라도 편리하게 필터 교체가 가능하도록 약간의 개조(부품교체)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3년째 쓰는데,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물이 매우 가늘게 나오는 것이었다. 원인은 바로 저 압력통! 역삼투압 방식은 워낙 정수 속도가 느려서 평소에 정수를 해서 사진 가운데 보이는 모터를 돌려 저 둥근 압력통에 꾹꾹 채워넣어둔다. 사용자가 물을 틀면 압력통의 질소 압력에 의해 물이 밀려 나오기 때문에 적어도 저 압력통에 모아진 만큼의 물은 콸콸 나오는 방식이다. 그런데 저 압력통의 스프링 역할을 하는 질소가 조금씩 새서 나중에는 충전을 해야 하거나 통을 아예 새로 사야 한다는 것이다. 질소 충전은 2만원이고 한 번 새면 계속 샌다는 것, 그리고 통을 새로 사는 값이 4만원이다.

아무래도 이 기회에 정수기를 바꿔야 할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을 과감히 하게 된 것은, 우선 이놈의 하우징형 정수기 필터를 교환하는 일이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무겁기도 엄청 무거워서 낑낑대며 꺼내 대형 다라에 넣은 다음 저 둥근 원통형의 필터 하우징을 열어야 하는데 이것이 또한 매우 힘이 들고 너무나 고역이었다. 처음에 필터를 교환할 때는 너무 무거운데 열리지 않는 하우징을 잡고 몸살을 하다가 새로 한 마루를 긁어 마누라에게 엄청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또 다른 이유는 Filter114에서 판매하고 있는 정수기 DIY 세트들이 가격도 저렴하고 가볍고 겉모양도 매우 미려하기 때문이었다. 특히 필터 교환은 그냥 빼고 끼우기만 하면 되는 매우 쉬운 방식인 것 같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과감히 정수기 자작에 도전하기로 하였다.

낡고 꼬질꼬질한 저가형 포싯도 깔끔한 우리 씽크대에 어울리지 않아 불만이었는데 자~알 되었다.


나의 희망, Filter114에 문의를 했더니 자작은 매우 쉽고, 게다가 현재 남은 역삼투압 하우징형 정수기 필터들도 새 방식에 맞는 필터로 교체해 주겠다는 것이다. 배송기간조차 기다릴 수 없어서 일원동의 Filter114 본사로 직접 차를 몰았다. 사무실은 어수선하고 전국에서 상담을 받는라 직원들이 모두 정신 없는 와중인데도 친절하게 지하 공장의 담당자에게로 직접 안내해 주었다. 거기서 신속하게 필터를 교환받고, 추천하는 DIY 세트와 부품을 받고 설치에 대한 간단한 자문을 얻었다.

1년치 필터 세트도 받고,



씽크대 아래 들어갈 박스와 각종 연결 부품, 그리고 새 포싯과 설명서도 받았다. 이렇게 해서 들어간 비용은? 놀랍게도 0원이다. 기존의 필터 세트 2년치를 정수기 DIY세트와 1년치 필터 세트로 교환해주면서 추가된 3천원마저 직접 차를 몰고 왔다고 깍아주었다. 그래도 그게 아니라고 자꾸 돈을 드려도 받지를 않는다. 거듭 감사를 표하며 신나게 집으로 돌아왔다.



설명서와 홈페이지 동영상 등을 참고하여 조립하는데 몇 분 걸리지 않아 정수기 본체 조립을 완성할 수 있었다. 특히 저 연결 꼭지들이 참 신기한 것들인데, 그냥 호스를 끼우기만 하면 물이 새지도 않고 특정 공구를 사용하지 않으면 절대로 빠지지도 않는다. 이 연결 꼭지들 덕분에 조립은 매우 쉽다. 우리집의 경우에는 이미 정수기를 사용하고 있던 터라 수도와 연결하는 공정, 배수 호스 연결, 포싯 설치를 위한 씽크대 가장자리를 드릴로 구멍 뚫기 등의 공정들을 생략할 수 있어서 더 쉬웠던 것 같다.

아래 사진은 조립을 끝내고 사용전에 필터를 하나씩 프레싱(제작 과정에서 생긴 내부 분진 등을 제거하는 작업)하는 모습이다. 수도 입수 밸브를 열고 매 필터마다 2리터 정도씩 물을 빼주면 물에 섞여 분진이 제거된다. 



덮개를 덮어 설치가 완전히 끝난 모습이다. 기존 하우징형보다 훨씬 깔끔하고 공간도 반도 차지하지 않을 정도로 슬림하다. 가볍고 필터 교체도 간편하고... 온가족이 정말 만족했다. 그래서인지 시식한 물맛도 참 좋았다. 정수기 앞 씽크대 문짝에는 필터 교환일자를 적을 수 있는 메모장을 부착하여 정수기 자작을 마무리 지었다.



새로 설치한 고급형 포싯이다. 번쩍번쩍 깔끔 고급스럽고, 손잡이도 옆으로 돌려 열고닫는 방식이라 훨씬 더 편하다. 물도 잘 나오고, 이전처럼 모터를 돌리느라 전기를 소모하고 모터 소음까지 감수하는 것을 피할 수 있으니 대만족이다.


정수기를 처음 설치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비용이 많이 들지는 않는다. Filter114에서 판매하고 있는 정수기 DIY 세트는 4만원 정도이고, 필터 세트는 5만원에서 10만원대까지 다양하게 고를 수 있다. 최고급형 필터 세트에 누수경보기까지 있는 언더씽크형 정수기도 14만원이면 자작으로 설치할 수 있다.

설치도 간편해서 누구나 가정용 전동드릴, 스패너 정도만 있으면 넉넉잡아 반나절이면 충분히 자작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정수기! 이제는 비싸게 사지 말고 자작들 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