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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일기

고난과 시련의 장마 - 7월 2일 텃밭

장마 시작 후로 연일 폭우가 쏟아져 밭에 들어가 작업하기 힘든 상황이 이어지고 있던 중에 토요일 장마가 소강상태여서 오랜만에 밭에 나가 일을 했습니다. 역시나 때 이른 긴 장마에 떼로 달려드는 벌레에 살판나서 퍼지는 잡초로 밭이 말이 아닙니다.
  

옥수수가 벌레 공격으로 처참합니다.

멸강나방 애벌레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겨울을 나지 못하는 것이니 중국에서 올해 날아온 것인데요, 모든 벼과 식물을 무참히 공격한답니다. 나란한 잎맥을 가진 텃밭의 풀들조차도 다 이런 모습입니다. 농약을 치면 일거에 해결되겠지만 바로 그 농약이 이런 상황을 되풀이하게 만드는 주범이 아닐까요. 농약은 해충보다는 그것들을 잡아먹으며 생태계의 균형을 이루는 이로운 천적을 더 괴멸시키기 때문이죠.
벌레와의 전쟁에선 인간이 질 수밖에 없고 또 져야 합니다. 생태계를 파괴해서 더 많은 수확을 하려는 인간의 욕심에 반하여 균형을 되찾으려는 생태계의 노력이니까요. 만약 이 전쟁에서 인간이 이기면?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승리죠. 결국 인간의 괴멸을 보증하는...

시간이 부족해서 지난 주에 미처 묶어주지 못했던 고추가 다 넘어졌습니다. 그래도 말라죽지 않고 다들 잘 버티고 있네요.

문제는 고추 줄기 아래쪽 흙이 닿는 부분이 이렇게 녹았다는 겁니다. 바이러스성 역병이 든 것인지 벌레가 갉은 것인지 모르겠네요.

쓰러졌다 일어난 구불구불한 녀석들을 확대해 보니 파인 자국이 선명합니다. 어떤 벌레의 이빨 자국일까요, 아니면 곰팡이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녹은 흔적일까요? 공동경작 팀에서 많은 공을 들여 왔는데 이런 모습이라 매우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고추들은 아직 시들지 않고 싱싱하게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 어떤 시련을 이제 막 극복한 자랑스러운 모습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 녀석은 지난 번 태풍에 줄기가 꺽여 윗 부분이 아예 날아간 경우인데요, 뽑지 않고 두었더니 이렇게 부러진 줄기 옆으로 새 줄기를 올렸습니다. 남다른 고난을 이긴 때문인지 아래쪽에 파인 흔적도 없네요. 대견스럽습니다. 온실 속에서 농약, 비료 먹고 웃자란 녀석들보다는 이렇게 온갖 시련 이기고 버틴 녀석들이 큰 일을 내는 경우가 많죠.
내일 또 비가 예고되어 있지만 EM, 난각칼슘, 목초액, 막걸리 등을 희석시켜 분무기로 뿌리, 줄기, 잎에 골고루 뿌려주었습니다.

공동경작하다보니 개인 텃밭에 쏟을 시간이 아무래도 부족한 모양입니다. 고추밭이 숲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편안하고 무덤덤한 것으로 보아 약간은 득도(?)한 것도 같습니다.

부추는 보이는데 그 앞쪽에 대파들은 완전히 묻혔네요...

고구마의 힘찬 모습인데요, 고랑에 바랭이 기세도 무섭네요.

지난 주에 일부만 수확하고 남겨둔 것인데요, 때이른 장마 때문인지 전반적으로 완두콩이 다 여물기도 전에 말랐습니다.

역시 지난 주까지 무성하던 강낭콩이 긴 장마에 거의 다 쓰러져 녹았네요...

나무가 된 아주까리입니다. 슬슬 몇 장씩 뜯어 말려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겨우네 선비나물 잘 먹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아욱은 자꾸 수확해야 세지지 않는데 오늘도 짬이 없어 세져가는 모습을 보고만 옵니다. 들깨와 차조기도 잎을 몇장 얻어와도 되는데...

겨울 난 상추나무... 아직 꽃대를 올리지 않았으니 두텁고 아삭한 상추 수확은 계속되어야겠죠? 그 뒤로 봄에 심은 상추도 보입니다.

벌레 쫓으라고 심은 초코민트와 차조기들조차 벌레에 뜯겨 구멍이 송송입니다.

언덕에 심은 박도 덩굴손을 내밀고,

호박은 본격적으로 언덕을 지배할 채비를 합니다.

장마철에 줄기를 손으로 뽑아내는 것처럼 쑥쑥 자란다는 토란... 아직은 야생 돌콩의 기세에 눌려 있네요. 

마늘은 거의 줄기가 말랐습니다. 수확은 하려면 맑은 날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썩지만 않으면 알은 계속 굵어진다니 진득한 기다림이 필요한 시기인 거죠.

그래도 궁금해서 그 중 대가 굵은 것을 하나 뽑아 봅니다.

예상과 달리 알이 제법 들었습니다. 밑거름도 넣지 않았고, 밭도 뒤집지 않았고, 겨울에 보온도 거의 해주지 못했고, 항상 풀이 무성했는데 이정도면 훌륭한 것 같습니다. 까서 먹어보니 제법 아리고 마늘의 풍미가 느껴집니다.

척박한 오이망 아래서도 오이가 줄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수세미도 오이망을 휘감기 시작했네요.

의지할 곳을 찾는 덩굴손의 간절한 움직임이 느껴집니다. 이런저런 속도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이런 느린 움직임은 조소의 대상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느린 움직임이 바로 생태계에서 유일한 생산자라는 위대한 지위를 식물에게 보장해주고 있는 건 아닐까요?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이런 현수막과 마주치게 됩니다. '십분 먼저 가려다 수십년 먼저 간다.' 인간의 전반적인 과속에 대해 많은 성찰이 필요합니다.

쓰러진 완두와 강낭콩을 다 수확했습니다. 강낭콩은 알이 다 여물질 않아서 선명한 붉은 색이 거의 나타나질 않고 콩알도 무른 상태입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변덕스런 날씨로 작물의 수확시기 맞추기가 참 힘듭니다. 텃밭 초보자용 작물인 강낭콩 한 알도 제대로 여문 것을 먹기 힘든 세상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