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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일기

5월 28일 텃밭 - 수양의 계절

날이 무척 더워졌습니다. 잠시만 김매도 땀이 나고 살이 타니 일하기가 무척 힘들죠. 풀과 벌레들은 더욱 기승을 부리구요. 이런 상황에서는 흐르는 땀도 즐길 줄 알아야 하지만 조급함과 욕심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텃밭이 오히려 스트레스를 쌓이게 하고 병을 주겠지요. 자고로 텃밭에 수양의 계절이 온 것입니다. 

완두콩이 꽃을 피웠습니다. 일년에 두번 수확하는 두벌콩이라 그런지 성장 속도가 매우 빠릅니다.
 

고구마 심으려 뒤집은 실패한 감자밭에서 홀로 살아남은 감자가 줄기를 올렸네요. 고구마밭에 감자 하나... 살겠다고 나온 녀석이니 몇 개나 달리나 두고 보겠습니다.

얼갈이에 붙은 벼룩벌레... 배추, 열무, 갓은 구멍이 뻥뻥 뚫렸습니다. 벌레마저 좋아하는 얼갈이... 벌레도 먹을 수 없는 시중의 약뿌린 배추들보단 훨 낫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떤 것은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이런 녀석들 때문에 다른 채소들이 피해가 덜하다는데요, 채소들이 이런 상황을 만들었건 벌레들이 이런 선택을 했건 이속에는 수만년 이어온 지속가능한 자연의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겁니다. 

아욱이 하루가 다릅니다. 다음 주부터는 아욱 된장국이 집안의 주 메뉴로 등장할 것입니다. 어린 잎을 쌈으로 먹으니 다른 쌈채소와 다른 색다른 맛이 느껴집니다.

새로 심은 상추도 다음 주부터는 상당히 많이 나오겠습니다. 작년에는 상추 수확이 너무 많았는데 올해는 적당한 것 같군요. 상추에 질리지 않을 정도로요...

겨울을 난 상추들이 역시 단단하고 두껍고 맛도 깊습니다. 한번 자란 작물은 쉽게 뽑지 말고 어떻게든 살려놓아야 한다는 지혜(?)를 배웁니다. 수확할 수준의 크기로 키우려면 항상 많은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밑거름을 하지 않아서인지 고추가 힘을 받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거름을 하지 않으면 병충해도 더디 온다니까 장마지나 늦게까지 고추를 수확할 수 있을거라는 위안도 삼아봅니다.

보리는 곧 수확해야겠군요. 불에 그을려 비벼 먹어보아야겠습니다.

어릴 적 엄마 등에 업혀 길고 긴 시골길따라 친척집에 갈 때 칭얼거리면 엄마가 손으로 비벼줘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게 보리가 아니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꽤 어렸을 적인데 묘하게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어린이의 칭얼거림을 달랠 정도의 맛을 지금도 느낄 수 있을까요?

옆 밭에서 주워온 들깨... 아직은 힘을 받지 못합니다만, 잡초과라 금방 퍼져서 텃밭을 장악할 겁니다. 명색이 그래도 자연상태로 발아한 녀석이니 최소한 2년차 옥길동 토종입니다.

차조기... 이것도 옆밭에 지천으로 난 것들을 호미로 살짝 들어다 옮겨 놓은 것입니다. 차조기도 역시 들깨 종류라 키우는데 손 갈 일이 별로 없습니다. 작년에 차조기 씨를 뿌렸다가 하도 많이 나서 옆밭에 나눠주고도 매일 차조기 잎만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생명력으로 따지면 들깨보다 더 심한 녀석이죠. 작년에 옆밭에 나눠준 것이 주인이 밭 관리를 하지 않아 꽃을 피우고 씨를 맺어 자연스럽게 퍼진 것이니 요놈도 옥길동 2년차 토종인 셈입니다.

옆밭에서 분양받은 초코민트입니다. 허브답게 향기가 예술입니다. 벌레들이 싫어하는 것 같아서 몇개 심어보았는데 역시 잡초과라 잘 자랍니다. 가끔 샐러드 만들 때 다져서 뿌려보아야겠습니다.

날씨가 더워지니 쇠비름이 나타났습니다. 오행초라고 건강에 무척 좋다고 하니 더이상 텃밭에 잡초가 아닙니다. 어떤 분은 몸에 좋다고 해서 캐다가 텃밭에 심었는데 심는 족족 활착을 못하고 죽어버리더랍니다. 맘대로 되면 잡초가 아니죠? 잡초도 잡초정신이 있답니다~^^

열무가 꽃대를 올리네요. 빨리 수확해야겠죠?

옆 밭의 쑥갓 꽃이 크고 탐스럽게 피었는데요 정말 아름답습니다. 쑥갓은 관상용으로도 좋을 것 같습니다.

대파꽃도...

갈아 엎은 감자밭에 자황고구마를 심었습니다. 어떤 맛일까 궁금합니다.

호박고구마도... 감자 농사는 하나도 못 건졌으니 고구마 농사는 잘 되리라 생각합니다. 비가 적당히 와서 빨리 활착하면 좋겠네요. 요즘은 고구마 줄기가 고구마보다 더 비쌉니다. 작년에는 텃밭에 고구마 모종 달랑 3개 심어서 엄청난 줄거리를 수확했었지요. 대신에 고구마는 먹을 수 없는 것 세 개를 수확했습니다. --;;;

얼갈이를 곧 수확할 것이니 그 사이에 고구마를 심습니다. 고구마가 뙤약볕에 노출되지 않으니 더 활착을 잘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같은 열무인데 어떤 것은 이렇게 보라색입니다. 꽃이 참 예쁘네요.

수확한 열무로 물김치를 담궜습니다. 시원한 열무국수 생각에 군침이 도네요~~ 본격적으로 더운 여름이 닥치기 전에 열무를 수확해서 그것을 김치로 담궈 익혀 더운 여름을 이겨내는 사람들... 작물과 인간이 오랜 역사를 거쳐 조응한 결과가 아닐까요? 사람만 조급해하지 않으면 세상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지속가능할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