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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일기

공동경작이 좋은 이유

작년 1년간 5평 텃밭을 가꾸면서 정직한 자연과 포근한 흙에 매료되었습니다.
이 정도면 시작은 잘 된 편이지만 '자급하는 소농'이 되려면 아직 갈길이 멉니다. 공동경작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공동경작을 하면 곡물, 열매채소, 뿌리채소, 고추 마늘 등의 양념 등 다양한 작물을 키워볼 수 있고, 버거움 없이 제법 규모있는 토지를 경작할 수 있습니다. 나태함도 이길 수 있고 서로 의지하고 함께 배우며 공동체의 소중함도 깨닫게 되겠죠.

문제도 좀 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새참(막걸리)을 과식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더 기대거나, 작물에 무성의해서 수확 때 나눌 것이 거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공동체적 삶을 지향한다면 이런 문제들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방안, 방법도 배워야겠으니 도시의 공동경작 팀에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닐 겁니다. 

공동경작 감자밭에 열무 싹이 잔뜩 나왔습니다. 우리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씨를 뿌리지 않았다니 동네 할머니들의 소행이 아닌가 의심도 해 봅니다. 감자가 본격적으로 자라기 전에 열무를 수확할 수 있다는군요. 
열무 주변에 가는 잎을 보이는 녀석들은 환삼덩굴 싹입니다. 방치하면 금방 날카로운 가시를 가진 덩굴로 밭을 돌이킬 수 없이 황폐화시켜버리지요. 뽑아서 씹어보니 인삼 맛이 납니다. 지천으로 돋아난 녀석들을 모아 밀가루 뿌려 쑥버무리처럼 만들어 새참으로 함께 나눠 먹었습니다. 공동경작 모임의 잡초 파티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습니다~


밭가 언덕에 호박을 심었습니다. 구덩이 파고 거름 한 삽 넣고 흙을 살짝 덮고 물을 흠뻑 주고 호박씨 세 개 넣고 흙을 조금 덮었습니다. 잡초도 잡고 호박도 따고... 일석이조가 되겠죠? 빈 곳마다 키가 큰 아주까리도 심었습니다. 옥수수도 밭두렁에 죽 심을 예정입니다.  


물기가 많은 곳에 미나리꽝을 만들었습니다. 물을 퍼다 붓고 돌미나리 심고... 몸에 좋은 미나리가 얼마나 날려나요? 


밭 밑 도랑 가에 습기를 좋아하는 토란을 심었습니다. 지리산에서 토란 두 포대를 사서 겨우내 고구마처럼 삶아먹고 토란탕 끓여먹고 남은 것인데 싹이 조금씩 났더군요. 구덩이 파고 거름 한 삽 넣고 토란 싹이 나오는 쪽을 위로 향하게 해서 한 구덩이에 세 개씩 심었습니다. 토란은 잊을만 하면 나온다니 6월 쯤에나 잎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곳은 원래 환삼덩쿨 숲이 되는 곳인데 토란의 크고 넓은 잎이 이곳을 지배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양파밭 앞에 오이망 펜스를 세웠습니다. 혼자 하면 하루 종일 걸릴텐데 여럿이 하니 1시간 만에 높이 2m, 길이 6m의 거대한 구조물이 만들어졌습니다. 작년에는 저거 한칸 만드는데 혼자서 몇 일간 고민하고 낑낑댔고요, 한참 덩굴이 뒤덮을 즈음 태풍으로 무너지는 바람에 아까운 갓끈동부와 토종오이 덩쿨들을 눈물로 포기했더랬습니다. 그래도 무너지기 전까지 정말 엄청난 양의 갓끈동부와 토종오이를 수확했었지요. 그 때의 3배 크기이고 훨씬 튼튼하게 만들어서 태풍이 와도 끄떡 없을 것 같고요, 거름도 넣었으니 수확도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수세미도 심고, 박도 심고... 


토종오이도 심고, 갓끈동부와 어금니동부도 심었습니다.
 

빈 땅마다 새로 일궈서 대파와 부추 모종도 심었습니다. 여럿이 함께 하니 수백개 모종도 불과 몇 십분만에 뚝딱입니다.


덕분에 내 작은 오평 텃밭에도 부추와 대파가 심겨지게 되었습니다. 텃밭에서 가꾸기 힘든 토란, 수세미, 호박 등은 물론이고 텃밭에서 충분히 키울 수 있는 부추와 대파 등도 공동경작을 통해서야 키워보게 되는군요.

공동경작을 하게 되면 자기 텃밭을 돌볼 시간이 절대 부족합니다. 그래서 올해는 밭을 갈지 않고 비료를 주지 않고, 물도 가능한 주지 않고, 풀도 가능한 매지 않는 아주 아주 게으른 자연농법에 도전해 보려고 합니다. 그래도 시금치들이 잎을 주기도 전에 꽃대를 올리니 살짝 짜증이 납니다.

케일도 짜증나게 하고...

적갓마저 짜증나게 합니다.

다행히 곱슬겨자는 작지만 단단한, 그리고 아내가 좋아하는 매콤함을 가득 담은 잎을 선사하는군요. 꽃대가 올라온 시금치는 뿌리채 뽑아서 흙만 씻어내고 살짝 데쳐서 된장에 버무리니 씹는 질감이 정말 좋습니다. 적갓은 높이 올라온 꽃대를 모두 꺽어 와서 된장에 찍어 먹었습니다. 아삭아삭 식감은 좋은데 쓴 맛이 지나쳐 마늘대보다 더 맵군요. 쓴 것도 참고 먹으면 맛있습니다~^^

파는 다시 잘 살아나서 자리를 잡았네요. 따스한 봄볕의 힘입니다.  


보리가 너무 자라서 먹기는 더이상 힘들 것 같아 모두 뽑아 녹비작물처럼 멀칭해 보았는데요, 아직도 살아남은 녀석들이 있습니다. 그럼 이 녀석들은 잘 살려 보리알이 맺히는 것을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털보숭이 청보리는 참 아름답죠?

농부들이 싫어하는 대표적인 잡초 소리쟁이입니다. 요즘 온통 밭 안팎에 지천이죠. 집에 가져갈 것이 별로 없어서 이 놈들을 가위로 잘라모았습니다. 한참 밭 가를 맴도는데 어떤 분이 자기 텃밭에 난 소리쟁이를 모두 뽑아 쌓아놓았더군요. 얼른 달려가 뿌리만 가위로 잘라내고 모았더니 과일상자 한 박스 가득입니다.

집에 와서 소금물에 살짝 데쳐 된장에 무쳤습니다. 부드러운 고기를 씹는 질감이 참 좋습니다. 된장국에 넣어도 시금치나 근대보다 더 맛있다고 하니 다음 주에는 소리쟁이 된장국을 끓여보아야 겠습니다.

요즘 잡초들의 전성시대입니다. 민들레, 돌나물은 물론 비름, 쇠비름, 쇠뜨기들도 인기가 하늘을 찌릅니다. 소리쟁이도 조만간 뜨지 않을까 싶네요. 조바심내지 않고 진득하게 번식하며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잡초... 최후의 승자로 남을 것 같은 농부의 모습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