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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생각

바람난 여인과 덧없는 사랑 - 화야산의 봄꽃

4월 9일 경기도 가평에 있는 화야산에 봄꽃 구경 다녀왔습니다. 얼레지, 꿩의바람, 노루귀가 만개하고, 생강나무, 산괴불주머니도 꽃을 풍성히 달고 있었습니다. 


내비로 강남금식기도원을 찍고 아침 8시에 일찍 출발하였습니다. 관악구에서 1시간을 조금 넘겨 화야산 입구에 도착하였습니다. 입구의 등산안내판입니다.


벼 화에 이끼 야가 맞는데 현판이 잘못 되었다네요. 운곡암의 구름 운자도 잘못 쓰인 것입니다.

운곡안 주지 백!

오래된 비석에서 제대로 된 한자를 볼 수 있습니다.

슬레트 지붕에 쓰러져가는 대웅전이 참 소박합니다. 바로 옆에 새로 크게 지은 현대식 대웅전이 또 있습니다만 없는 것이 더 나을 뻔 했습니다.

갯버들이 꽃을 피웠습니다. 꽃마저 버들스럽습니다.

시냇가 바위 틈에 돌단풍이 우아하고 싱그럽습니다. 


개별꽃...

둥근털제비꽃...

남산제비꽃... 다 똑같아 보이는데...

꿩의바람입니다. 


털복숭이 날벌레가 꿩의바람을 찾았습니다. 


시냇가에 올망졸망 순백의 무리들...

양팔로 얼굴을 가린 모습이 수줍은 처녀 같기도 하고, 꽃말처럼 '덧없는 사랑'에 눈물짓는 여인네 같기도 하고...

형형색색의 노루귀... 흰색, 분홍색, 자주색, 파란색 등 다양합니다.


화야산의 볼거리는 뭐니뭐니해도 얼레지입니다. 꽃잎을 발랑 뒤집고 있는 모습이 '바람난 여인(얼레지 꽃말)'을 연상케 합니다.

마치 펜으로 꽃잎을 그린 듯한 선은 벌을 유인, 안내하는 장치라 합니다.

이런 얼레지 군락이 정상 아래 잣나무숲까지 펼쳐져 있습니다. 솔잎 두텁게 쌓인 잣나무 숲 바닥에서 자랄 수 있는 풀은 없는데 얼레지들은 그 솔잎 무더기마저 뚫고 올라와 꽃 피울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얼레지를 찍으려는 사진작가, 사진동호회원들이 엄청 많이 왔습니다. 삼각대, 반사판은 물론 비옷같은 가운을 입고 갖은 포즈 잡으며 얼레지 밭을 뒹굴고, 심지어 전지가위를 들고 작품만든다고 설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꽃을 감상하며 즐기는 것이 아니라 사진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이들이 머물다간 자리에는 뭉개지고 꺽인 얼레지들이 많습니다. 얼레지 입장에서 보면 7년만에 꽃을 피우는 것인데 그만 쓰나미를 만난 격입니다. 


올괴불나무에도 예쁜 꽃이 달렸습니다.

얼레지에 치여 빛을 보진 못했지만 사실 온 산에 노란 생강나무 꽃이 송이송이 빛났습니다.

미치광이풀도 꽃을 달았습니다. 이걸 먹은 소는 거품을 물고 날뛴다고 합니다. 그래도 살처분되진 않으니 다행인거죠...
 

현호색입니다. 이름이 참 특이하죠. 처음 듣는 분들은 색깔로 착각하고 무슨 색일까 궁금해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만, 검을 현, 오랑캐 호, 찾을 색으로 이루어진 한자어 꽃 이름입니다. 굳이 따지자면 검을 현자가 하늘을 뜻하니 하늘색이겠군요. 옛이름은 녀계(=기생)구슬이었답니다. '보물주머니'이라는 꽃말처럼 뭔가 소중한 것을 담아두면 좋겠네요. 무슨무슨 괴불주머니들, 금낭화, 호색 등이 다 현호색과랍니다. 그 꽃들이 다들 한 주머니 하죠? 

큰괭이밥...

애기괭이눈...

산괴불주머니...

양지바른 곳마다 양지꽃이 피었습니다. 


사람이 일군 밭에는 역시 먹을 수 있는 꽃다지와 냉이가 많습니다. 사실 요즘 밭에서 나오는 잡초는 뭐든 살짝 대치기만 하면 다 먹을 수 있습니다. 인간과 공존해온 잡초... 참 신기하죠?

만주바람꽃도 제법 보입니다. 꿩의바람에 비해 작고 잎 색이 진합니다. 꽃잎 수도 월등히 적군요.

처녀치마... 잎이 처녀들의 치마같은가요? 커다란 사진기를 든 할아버지 한 분이 험한 욕을 하십니다. 이곳에만 있는 처녀치마를 훼손시킨 놈들이 있다고... 들꽃의 자태를 독점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우리 들꽃들이 모두 위험에 처한 듯 합니다. 


개암나무 수꽃과 암꽃이랍니다. 수꽃 2개가 나란히 늘어지는 단계를 보여주고 있네요. 암꽃은 바닷속 말미잘이 촉수를 내놓은 듯 합니다. 너무 작아서 겨우 초점을 맞췄습니다.

이번 주말까지는 얼레지가 상당히 남아 있을 듯 합니다. 특히 그늘져 서늘했던 잣나무 숲에는 이제 얼레지 봉오리가 올라오고 있었으니 그곳에서는 이번 주말쯤에 얼레지의 절정을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봄에는 얼레지를 보며 바람난 여인을 상상하고 흘러내린 근육과 피부를 조금 팽팽하게 긴장시켜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사그러져가는 열정도 함께 살아올지 모르는 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