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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일기

3월 19일 텃밭 - 샛파란 마늘싹!

오랜만에 공동경작팀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고 농부학교 수강생들의 밭만들기도 구경하였습니다.
검은 비닐 봉지와 과도 수준을 넘어 호미와 고무장갑으로 무장한 전문적인 할머니가 계수동 텃밭의 봄나물들을 훑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씁쓸하지만 어쨋든 봄을 실감합니다.

굴껍데기 분쇄 찔끔, 물긷기 찔끔 하고서 부침개에 막걸리 홀짝거린 것 밖에 없는데 벌써 5시가 되었습니다. 
날씨도 많이 풀렸고 내일 봄비가 온다니 텃밭의 비닐터널 철거하는 일을 더이상 미뤄서는 안될 것 같아 서둘러 옥길동 텃밭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가보니 옥길동 텃밭의 비닐터널이 거의 벗겨져 있습니다. 누군가 벗기다 만 것인지 겨우내 불었던 그 어떤 강풍보다 더 세찬 바람이 지난 주에 갑자기 불어닥쳤던 것인지 알 수 없네요. 농촌은 물론 이젠 도시 텃밭의 작물까지 도난당하는 일이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합니다. 작물을 가꾸는 것보다 텃밭을 사수하는 일이 농부에게 더 중요한 일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마음이 착잡해 집니다. 


이번 주 초에는 영하로 내려갔었는데 비닐이 벗겨졌으니 작물들이 좀 얼었나 봅니다. 저번 주말까지 쌩쌩하던 것들이 죽거나 상당히 말라비틀어진 흉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시금치는 원래 겨울 작물이라서인지 양호한 편입니다. 

비닐터널 안에서 편안하게 자라던 쪽파들은 갑작스런 추위와 건조한 공기 때문인지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쪽파의 특성상 이 상태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겨우내 노지에서 자랐던 옆 텃밭의 파들을 보면 확실히 비교가 됩니다. 건강하고 튼실하죠.

추위를 타지 않는 보리도 비닐터널의 온기와 습기에 의존성을 높인 때문인지 별로 아름답지 못한 모습입니다.

압권은 봄동배추입니다.

말라 비틀어진 잎 위로 뻗어오른 요것!

바로 장다리 꽃대입니다!
아직까지 제대로 성장을 못해서 잎파리 한 장 주지 않고 빌빌대던 녀석들이 갑자기 상황이 열악해지니 다급하게 종족 번식의 본능을 발휘하고 있는 것입니다. 종자 값도 못 뽑아낸 난 어쩌란 말이냐, 요놈들아??? 봄동 먹기 정말 힘드네요...

노지에 적응한 옆 밭의 배추는 이렇게 겨울을 이기고 튼실하게 자라는데...

청상추도 이렇구요,

곱슬겨자도 반쯤 말라 비틀어지고,

시금치도 어떤 것들은 꽃대를 올리려 합니다.

옆 텃밭의 시금치들은 참 건강하죠. 비닐터널의 어두운 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건가요?

케일도 힘겹네요...


청상추... 요렇게 겨우 겨우 힘내는 녀석도 있지만,


지난 주까지 배추잎처럼 울퉁불퉁 터프해 보이던 상추들이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적상추...

지난 주에 비닐터널 안에서 아름답던 텃밭이 좀 황량해졌습니다.
그래도 내일 촉촉한 봄비를 맞으면 한 숨 돌리면서 또 잘 적응해서 멋진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믿습니다. 다시 희망을 다지는 것 외에 달리 할 일이 없다는 것, 이거야말로 희망적인 것 아닌가요???

걷은 비닐을 잘 접고 활대를 뽑아 챙겨 나오다가 혹시! 하는 마음에 공동경작 마늘 양파 밭을 돌아 보았더니... 대박!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던 마늘들이 모두 알흠다운 싹수들을 들이대고 있습니다. 이런 싹수가 샛파란 것들~~!!

오매, 귀여운 거~

아이고, 이쁜 것~

제법 많이 올라온 이런 자랑스러운 녀석까지~

자, 마늘싹들을 찾아보세요. 숨은 마늘싹 찾기!

제법 규칙적으로 올라와 있죠?

저기서 누군가 쓰레기를 태우지 않았더라면 저 자리에서도 마늘싹들이 많이 올라왔을 것입니다. 도대체 어떤 몰상식한... 혈압 오르네요! 심호흡 한 번 하고... 그래도 참 다행입니다. 마늘이 다소 늦기는 했지만 대체로 건강하게 올라오고 있으니까요. 마늘싹이 올라오지 않은 자리에 병충해에 약한 작물들을 보충하면 훌륭한 사이짓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뭘 심는 것이 좋을까요?

마늘밭을 보니 양파밭도 비록 이런 상태지만 봄비 한 방이면 생기를 찾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 봅니다.

다음 주에는 양파밭과 마늘밭 주변에 줄을 치고 가능하면 오이망 덮을 펜스라도 미리 설치해야겠습니다. 가꾸는 일보다 지키는 일이 갈수록 힘든 세상... 현대 문명의 어두운 그림자, 그 야만성이 성큼성큼 우리를 덮쳐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