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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일기

2011년 3월에도 풍성한 텃밭

토요일 산더미처럼 밀린 직장일을 집에 가져 와서 날밤 까고 아침에 명상음악 틀어 놓고 반신욕을 하다보니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싶은 옅은(?) 깨달음이 있었네요. 그래봐야 홀딱 내려놓지 못하는 쫌스러움은 어찌지 못하지만서도 말이죠...
어쨋든 깨달음이 온 힘을 빌어 텃밭에 올해 첫 나들이 합니다. 지난 12월에 가보고 연이은 영하의 날씨에다가 이상하게 바쁜 일상이 이어진 덕에 텃밭에 가본지 무려 2개월이 훨씬 넘었네요.  

폭설에 비닐 터널이 무사한지, 강추위에 채소들이 죽진 않았는지 자못 궁금해 집니다.

지난 겨울에 덮어 놓았던 음식물 찌꺼기들입니다. 한 겨울 추운 날씨에도 미생물들의 움직임은 계속된 것 같군요.

오늘은 마침 배추김치 담그고 남은 잔해들을 있어서 가져가서 또 깔았습니다. 

비닐터널을 열어보니 자식들이 다들 열심히들 살고 있었네요... 반가워요~

시금치도 이만큼이나 자랐구요,

곱슬겨자도 왕성합니다.

쪽파도 많이 자라긴 했지만 파먹기에는 쪽파~알리네요...(썰렁 개~그!)

작년 내내 풍성한 미네랄을 제공했던 쌉싸름한 치커리가 결국 강추위에 운명하셨네요. 말라죽은 모습마저 풍성함을 보여줍니다. 꼬질꼬질 살아 있기보다는 잘 나갈 때 팍 가는 것도 멋질 것 같다는 퓔이 문득...

잎이 쪼글쪼글한 케일의 모습에서 지난했던 한겨울의 고난을 느낄 수 있었답니다. 이렇게 끝까지 살아 있는 모습은 또 얼마나 멋진가요?

3개월이나 지났지만 적상추는 여전히 먹을 수 없을 만큼 작습니다.

청상추도 마찬가지고요,

좀 빨리 커서 옮겨 심은 녀석인데 옮겨 심을 때 크기와 모양이 그대로네요. 상추치고 매우 터프해 보이는 녀석들입니다.

씨를 너무 많이 넣어서 촘촘히 자라는 시금치... 솎기조차 힘들어서 가위로 군데군데 숭덩숭덩 잘라왔습니다.

보리대는 지난 12월에 중간중간 가위로 잘라다 먹었는데 어느새 또 빼곡히 들어차 있습니다. 일부 누런 잎이 보이지만 여전히 아름답구요, 먹어보니 달큰하고 부드럽습니다. 얼른 가위로 숭덩숭덩 잘라 수확하였습니다.

먼저 심었던 시금치들인데요, 별로 건강해 보이지 않습니다. 다른 노지 밭의 시금치들은 바닥에 바짝 붙어 넓게 퍼져있는데 비닐 터널 안에서 습기가 많고 햇볕을 적게 받아서 인지 묘하게 키가 크고 잎은 쪼글아들어 있습니다. 더이상 크면 안될 것 같아서 몽땅 뽑아 왔습니다.

지지부진한 봄동배추들... 여전히 배추 모양도 못 갖추고 있습니다. 요즘 한창 먹는 봄동배추들은 어떻게들 키운 것들이여???

갓도 모양을 못 갖추기는 마찬가지... 게다가 밀식으로 군데군데 녹았습니다.

쑥갓은 여름이나 겨울이나 역시 먹기가 쉽지 않습니다. 돌아가셨네요...

전체적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주변이 다 황량한데 제 텃밭은 봄입니다요~ 텃밭에 비닐터널 칠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비닐 터널 안 친 옆 텃밭의 시금치는 바닥에 바짝 붙어 있는 모습이 보이죠? 뭔가 더 건강하고 강인해 보입니다. 

공동경작 밭도 돌아 보았습니다. 지난 겨울 공동경작 팀에서 심었던 양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아서 눈을 씻고 찾아 보았더니 이런 모습들이 몇 개 보입니다. 땅 속에는 살아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뿌리가 드러난 것들도 보이네요.

마늘밭에 가 보았더니 마늘들이 상당수가 드러나 있습니다. 이렇게 얼어죽은 것도 있고요...

얼진 않았는데 노출되어 있는 녀석도 있습니다. 이미 잡초들이 싹 내밀 준비들을 맹렬히 하는 것 같던데 마늘들이 잘 이겨낼지 궁금합니다.

주변 밭에서 토종배추가 질긴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였습니다. 겉은 말랐어도 가운데는 살아 있군요...

뉘 집 시금치인지 노지에서도 정말 실하게 잘 자랐네~ 부럽!

한 바퀴 도는 동안 내 새끼들 오랜만에 바람도 쐬고 햇볕도 즐겼겠군요. 밤이 되면 또 영하로 내려갈테니 당분간 덮어두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수확한 것을 보니 이렇게 한 보따리... 곱슬겨자, 시금치, 보릿대, 케일...

한 겨울에 키워 채소 귀한 때에 풍성하게 맛볼 수 있는 것, 텃밭하는 또다른 재미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