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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일기

12월 4일 - 겨울 텃밭 관리

김장채소 수확하고 텃밭 결산을 했으니 좀 오래 게으름을 피워도 좋을텐데요, 그런데 겨울을 나는 텃밭 푸성귀들이 궁금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궁극의 불모지인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를 벗어나 폭신한 텃밭을 밟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몸에 흙을 묻히지 않으면 병이 생긴다는 것은 단순히 흙의 이로운 물성이나 흙에 사는 미생물로부터 뭔가를 얻을 수 있다는 물질적인 이유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흙의 색깔과 모양을 보고 흙의 냄새를 맡고 흙의 감촉을 느끼며 대지의 품에서 위안을 얻을 수밖에 없는 정서적 이유가 더 큰 것은 아닐까요?   

일단 공동경작 양파밭을 가봅니다. 어지럽고도 선명한 신발자국들 사이로 가냘픈 양파 모종들이 위태롭게 서 있습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니까... 한겨울 잘 견디면 봄에는 살맛 나서 쑥쑥 크겠죠?  

영하의 날씨가 몇 번 있었고 강풍도 몇 번 불었는데 성장은 못하지만 잘 견디고는 있습니다.

문제는 저쪽 제한구역 줄을 무참히 끊고 온 밭을 침투한 어지러운 발자국들입니다. 지난번에는 아이들 몇이 야구하다가 공이 밭으로 떨어지니까 지체없이 이랑 고랑 가리지 않고 마구 밟고 뛰더군요. 제가 뭐라고 했더니 아이들은 잠시 쭈뼛쭈뼛하다가 계속 야구를 하고요, 마침 볍씨학교에서 나오던 교사 학부모들이 이 광경을 보고 해맑게(?) 웃으며 지나가더군요. ^^;;;

사방에 어지러운 발자국들... 내년에는 밭 가에 오이망 펜스를 설치하고 환삼덩굴을 키워볼까요? 어치피 전쟁은 계속될텐데요...

마늘밭 마른 풀 멀칭한 것들이 지난 주 강풍에 좀 날려 뭉쳤네요.
멀칭 아래에는 마늘싹은 아직 보이지 않고 온갖 봄나물(잡초?)들이 자리를 잡아가네요...

텃밭에 덩그러니 혼자 남은 배추...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소한 맛을 채워가는 것이 보여요~~ 요것이 바로 봄동배추 아닐까요?

김장 후 온갖 식물성 음식물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나온 것을 다 들고 나와서 밭에 덮었습니다. 작년에도 김장채소 심기 전에 퇴비를 딱 한번 넣었지만, 올해는 퇴비를 하나도 넣지 않고 풀과 음식물 쓰레기(식물성, 달걀 껍질 등)를 그대로 두껍게 덮어가며 텃밭을 해 볼 계획입니다. 겨울에는 파리가 없어서 음식물 쓰레기 덮어주기가 좋으니 최대한 많이 덮어야겠습니다. 파리가 나올 때 쯤에는 풀이 많으니 풀 위주로 덮어주면 되겠죠. 문제는 밭 가장자리를 빙둘러 막아줄 나무껍질이나 불록들이 있으면 덮어준 멀칭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고 영양분도 고랑으로 빗물따라 유실되지 않아서 좋을텐데 그게 안되니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방법이 있으면 추천들 좀 해주세요~~ 

상추가 꽤 자랐네요. 여름에 하도 싹이 안나서 씨를 많이 넣었더니 이번에 싹이 너무 많이 나서 중간중간 파내서 옮겨심어 봅니다. 춥게 자라서 인지 잎 두께가 두텁고 육질(?)이 매우 단단해 보입니다.

한겨울이 되어가는데 이런저런 쌈채들을 제법 수확했습니다. 한겨울에도 텃밭 재미 쏠쏠합니다~

보릿대가 많이 자랐습니다. 중간중간 자른 자리가 보이죠? 가위로 잘랐는데 양이 제법됩니다. 비빔밥에 넣었는데 쌉쌀하고 약간 지길 듯... 뭐 비타민이 시금치보다 몇배 많다니깐...

시금치도 너무 씨를 많이 넣었네요... 본잎들이 다들 나왔습니다.

먼저 뿌렸던 시금치들은 모양을 다 갖추었네요.

봄동배추는 너무 많이 싹이 난데다가 바람이 잘 통하지 않아서 일부는 녹았습니다.

적갓도 너무 많이 나오기는 마찬가지... 솎아주기도 엄두가 안날 정도입니다. 봄동배추나 적갓이나 좀더 자라면 솎죠 뭐...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농사인데 병나면 안되겠죠? ^^:::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는데요, 세상사 모두가 운과 기의 조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바둑, 고스톱과 같이 조합이 잘 된 것일수록 인기를 끕니다. 그런데 경마, 복권과 같이 전적으로 운에 기대는 것인데도 인기를 끄는 것들이 있습니다. 일등 당첨금을 엄청 올려서 사행심을 부추기는 거죠. 엄밀하게 말하면 자본과 국가가 서민들 피를 교묘하게 흡입해 드시는 사기인 겁니다. 

그렇다고 운을 완전히 없애면 정말 정직하고 좋은 사회가 될 것 같지만 별로 그렇진 못할 겁니다. 예컨데 만약 축구에서 운의 작동이 멈춘다면 기로만 우승이 결정되니 브라질과 같은 나라 빼고는 아무도 축구로 승부를 내려고 하지 않겠지요. 교조적 리더쉽의 이런 식의 정색이 사회 활력소들을 압살한 역사도 실제 많았던 것 같습니다.

농사에서 볼작시면, 정성과 공부가 기라면 날씨는 일종의 운일 것입니다. 올해 농사에서 운이 안 좋아서 우울하신 분들이 많을 건데요, 그러나 그것 또한 지리할 것만 같은 농사에서 없어서는 안될 도전꺼리이자 활력소로 생각하면 어떨까요? 그래도 여전히 세상에 농사처럼 정직한 것은 없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