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텃밭일기

9월 4일 텃밭 - 태풍과 벼룩잎벌레

김장 배추, 무 밭에 한냉사 씌운 후로 계속 비가 와서 텃밭에 나가지 못했습니다. 태풍이 수도권을 휩쓴 목요일 새벽에는 베란다 밖으로 멀리 보이는 소방서 옥상에서 쌓아놓은 하얀 판넬들이 용오름하듯 꼬리를 물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텃밭의 작물들, 한냉사 터널이 무사할지 심히 걱정되더군요. 작은 땅뙈기지만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날씨 변화에 민감한 생활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아니나다를까 토요일 텃밭에 나가보니 위용을 자랑하던 토종오이와 갓끈동부 지주대가 속절없이 쓰러져 있습니다. 20여개의 지주대를 빵끈과 오이망으로 엮고 또 살아있는 작물들이 부등켜 안고 있어서 설마 쓰러지랴 하고 일말의 희망을 갖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나무처럼 뿌리를 단단히 내린 아주까리도, 부쩍 키가 크고 대가 굵어지며 단단해지던 들깨와 차조기들도 뿌리가 반쯤 뽑힌 채 비스듬히 누워 있습니다. 그러니까 텃밭에서 위세를 자랑하던 작물들은 모조리 피해를 입었네요. 걱정했던 한냉사 터널이나 키작은 다른 작물들은 전혀 피해가 없습니다. 바람을 통과시키거나 바람보다 먼저 눕는 것은 여린 것들의 오랜 생존의 지혜겠지요. 


농부에게 땅이 있고 햇살이 있는 한 희망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작은 텃밭 일구는 도시농부도 실패를 무조건 빨리 훌훌 털어야 건강하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주까리와 차조기 등 세울 수 있는 것들은 바로 세워 단단히 밟아주고요, 실타래처럼 얽혀 쓰러진 토종오이와 갓끈동부는 알렉산더 대왕의 매듭풀기(?) 방법으로 과감히 잘라 한쪽 밭에 쌓았습니다. 작물에 희석하여 뿌려주려던 EM 발효 쌀뜨물을 희석하지 않고 그대로 쌓인 유기 퇴적물 위로 뿌려 주고 빠른 퇴비화를 기원하였습니다. 이 자리는 나중에 김장용 알타리무와 갓이 심겨질 곳입니다.


무너진 갓끈동부는 콩깍지를 딱 하나만 달고 있었습니다. 그리도 많이 주렁주렁 매달렸던 콩깍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눈을 씻고 뒤져봐도 다른 콩깍지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하나 남은 이 콩깍지가 어찌나 실한지요. 손으로 만져보니 안에 들어 있는 콩알 들이 예전과 달리 굵고 단단합니다. 정말 미스테리합니다~!


불가항력으로 황급히 생명을 마치는 순간에 모아낸 갓끈동부의 염원을 채종으로 풀어주어야겠죠? 아주까리 종자와 함께 후숙에 들어갑니다.


벼룩잎벌레는 여전히 심합니다. 노지에 줄뿌림한 무는 처참하구요,


한냉사 안의 무도 많이 뜯겼습니다. 그래도 노지보단 조금 나은가요?


처음 직파한 배추싹은 많이 뜯겼지만 그래도 이만큼이나 자랐네요.
나중에 다시 직파한 배추 어린 싹들은 하나같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뜯겼습니다. 비싼 배추씨앗을 사서 벼룩잎벌레 먹거리로 거진 다 주고 말았군요. 흙속에 이미 너무 많은 벼룩잎벌레들이 있어서 한냉사도 거의 무용지물입니다.
어쩌면 욕심껏 땅을 수탈하려한 것이 잘못인 것 같기도 합니다. 감자를 수확하고 나서 주변 풀이나 많이 베어 덮어주며 좀 묵혔으면 좋았을 것을 계속해서 열무 씨앗을 뿌려 수확도 못하고 벼룩잎벌레가 가장 좋아하는 특식을 제공하다보니 알을 낳고 새끼를 치고 해서 이렇게 많아진 것입니다. 이쯤되면 한냉사 터널 안도 김장밭이 아니라 벼룩잎벌레 우리라고 봐야겠네요. 텃밭 이름도 벼룩잎벌레 농장이라고 바꿔야 할까요?


두번의 배추 직파에서 건강하게 남은 것이 거의 없으니 배추 모종을 사다라도 심어야겠습니다. 연두농장에서 퇴비 한 포대와 토종배추와 일반배추 모종을 사왔습니다.


한냉사 안을 퇴비 뿌려 뒤집고 배추 모종을 심었습니다. 뙤약볕에 모종이 좀 시들시들해서 가장자리 큰 이파리들을 떼어냈더니 모종들의 모양이 별로 좋아보이진 않습니다. 그래도 땅에 물기도 많고 웬만해선 활착을 한다니 큰 걱정은 되지 않습니다.


이 한냉사 터널은 제 김장농사 실험동(?)입니다. 무, 토종배추, 일반배추, 일반 직파로 살아남은 배추가 다 섞여 있습니다. 무는 노지 무와 비교될 것이며,


3 종의 배추들도 서로 비교될 것입니다.(맨 앞은 직파로 살아 남은 일반 배추, 위쪽으로는 한쪽 줄은 토종 배추 모종, 한쪽 줄은 일반 배추 모종, 가운데 줄은 보식용 모종) 뭐 비교도 비교지만 작물의 종류와 조건이 다 다른데 설마 죄다 중도 탈락하진 않을거란 기대가 이런 시도의 이유라면 진짜 이유겠지요. 배추 모종 30개 심었는데 설마 배추 10포기 정도는 수확하지 않을까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