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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일기

8월 19일 텃밭 - 김장 농사 시작

8월이면 텃밭 농사의 꽃인 김장 농사의 시작입니다.
파, 열무농사의 실패를 딛고 김장 농사에서는 잘 해 보겠다고 새롭게 다짐을 합니다.

뙤약볕에 무슨 고생이냐고, 텃밭에 들어간 돈이면 사먹는 게 훨씬 싸고 맘 편하지 않냐고 아내가 가끔 툭툭 던지곤 합니다.
막히는 도로를 뚫고 몇 시간씩  달려가서 뙤약볕에서 돈 쓰고 독한 제초제 마시고 불량식품 먹고 스트레스 쌓아 오는 골프보다는 수백배 낫다고 응수합니다. 골프가 얼마나 재미있는데 그러냐고 말하면 텃밭농사가 얼마나 즐거우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육수를 흘리고는 신나서 집에 오겠냐고 점잖게 말해 줍니다. 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 이야기를 시작하면 아내는 더이상 응수를 하지 않게 됩니다.

텃밭농사를 물질적 손익계산을 일일이 따져야 하는 지겨운 일로 접근하게 되면 누구나 이와 같은 감정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골프에서는 왜 손익계산을 따지지 않고 텃밭농사에서는 그것을 그리도 따지는지 모르겠습니다. 노동과 놀이가 극단적으로 분리된 현대사회의 폐해일까요? 이 황량하고 비생산적인 도시에서 심신이 황폐한 중년이 몰입할 수 있는 생산, 치유, 탐구 활동으로서 더 나은 것을 찾지는 못할 것 같은 기분인데요. 생계를 걸고 농사를 짓는 전업 농부들에게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도닦고 탐구하는 기분으로 텃밭을 하니 잘 되면 잘 되는대로 기쁘고 안되면 안되는대로 새로운 도전거리를 주어서 좋습니다. 흐르는 땀방울의 궤적을 따라 신경을 간지르는 칙칙함조차 그렇게 정겨울 수 없습니다. 가족에게 좋은 먹거리를 가져오면서 느꼈을 동서고금 가장들의 뿌듯함을 척박한 현대에서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활동입니다.

배추를 모종을 하지 않고 직파을 하려고 하는데 주말마다 비가 와서 배추 씨를 넣을 타이밍을 놓쳤습니다. 더이상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마침 주말에 비가 오지 않는다고 해서 그동안 준비한 것들을 모아 싣고 들뜬 마음으로, 아내와 함께 텃밭으로 향합니다.

사실 열무농사의 실패는 조금은 황당했습니다. 벌레들과 적당히 나눠먹으려 했는데 이놈들이 내 것은 남기지 않고 다 먹은거죠. 토양살충제라는 농약을 뿌리면 벌레 문제는 한방에 해결이 되겠지만 악독한 벌레 뿐만 아니라 유용한 온갖 생물들까지 박멸하게 되고, 결국은 내가 그 독약을 코와 피부와 입으로 흡수하게 됩니다. 이런 공멸은 자연농법을 지향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죠.
그렇다고 벌레에게 작물을 일방적으로 빼앗길 수만은 없는 법. 그래서 모기장보다 촘촘한 한냉사 그물을 치기로 한 것입니다. 흙을 파다보니 흙 속에 무수히 많은 벼룩벌레들이 우굴거려서 과연 효과가 있을까 의심도 됩니다만, 그래도 배추좀나방이나 배추흰나비 애벌레와 같이 외부에서 들어오는 먹성 큰 녀석들을 막아주니 어느 정도는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밀어부칩니다.
배추, 열무, 무 씨를 적당히 뿌리고요, 활대를 꼽았습니다. 


그리고 한냉사를 덮고 가장자리를 흙으로 덮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하는데 제법 많은 비용이 들었습니다. 배추씨 5천원, 무씨 5천원, 한냉사 2만3천원(1.5m*80m, 두고 두고 쓰겠네요...), 활대 1만 2천원(600원*20개)... 그래도 농사 도구, 씨앗들이 자꾸만 쌓여서 부자가 되어가는 기분좋은 느낌입니다.


한냉사 터널 안을 찍어 보았네요. 뭔가 제법 김장배추들을 위한 안락한 분위기가 만들어 진 것 같죠?


벌써 격리된 녀석이 보입니다. 안에 들어갔으면 요놈도 배추잎을 꽤 뜯을 녀석입니다.


한냉사 올이 모기장보다 훨씬 촘촘하니 요런 작은 녀석들도 못들어가죠...


한냉사 안에는 배추+열무, 배추+무를 심고요,(배추와 열무를 함께 키우면 벼룩벌레들이 열무쪽으로 몰려가서 배추가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다는 설이 있어서 나름 머리를 쓴다고 써본 겁니다.)
한냉사 밖에도 무를 심었습니다. 과연 한냉사의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비교해 보려구요.


일주일 후에 가보니 한냉사 안팎의 무, 열무 싹들은 제대로 올라와 있는데요,


배추 싹은 거의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너무 깊이 심었거나, 품질이 좋지 않은 종자를 샀거나, 당일 파종 후 비가 억수로 와서 씨가 썩었거나, 아니면 벌레가 먹었거나... 뭔가 이유가 있을 겁니다.
이미 늦었을지 모르지만 직파하면 모종으로 심는 경우보다 스트레스가 적으니 따라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주말에 다시 더 많은 양의 배추씨를 줄뿌림으로 넣고 흙을 덮는 것도 고운 흙으로 위에 살짝 뿌려주는 정도로 매우 옅게 덮어주었습니다.
다음 주에는 배추 싹들이 우루루 올라오길 기대해 봅니다.


두벌콩(강낭콩)이 꽃이 피었습니다. 봄에 심은 것보다는 발육이 약하고 꽃도 드문드문이어서 별로 많이 열릴 것 같지는 않습니다.


토마토 곁순 심었던 것이 이렇게 자랐습니다만, 역시 뙤약볕에 잎이 마르고 발육도 지지부진입니다.


토종상추 꽃대입니다. 토종박사 안완식님의 채종법 강의를 듣고 책도 샀으니 가장 손위운 상추부터 채종해 봐야겠죠? 빨리 열매를 맺을 날을 기대합니다.


파를 심었던 밭을 갈아 엎고 배추를 심었으니 드문드문 살아 있던 파는 한쪽 귀퉁이로 모았습니다. 워낙 빌빌대던 녀석들인데다 옮겨심기까지 해서인지 내가 봐도 답답합니다. 


갓끈동부와 토종오이는 한창입니다.


무성한 밀림에 자리잡은 거미... 이놈이 익충인 것은 확실합니다.


노린재 한 마리는 이미 포획되어 돌아가셨고요(아래쪽), 지금 막 걸린 방아개비가 거미줄에서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확실히 자연을 그대로 두면 스스로 균형을 잡는 것 같습니다. 해충이 번창하면 그것을 먹는 천적이 꼭 나타난답니다. 욕심내서 농약을 치면 천적까지 다 죽어버리고, 그래서 나중에 빨리 번성하는 해충이 다시 창궐하면 속수무책이 되는 겁니다. 한냉사를 친 것도 이런 종류의 욕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그래서 쉽사리 떨쳐버리기는 힘든 것 같습니다.


쯧. 고추나무가 2개 말라 죽었습니다. 앞에는 갓끈동부와 토종오이가, 뒤에서는 가지가 숲을 이뤄서 햇빛을 보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아니면 웃거름을 전혀 주지 않아서 일까요?


많지는 않지만 방울토마토가 꾸준히 익어줍니다.


옆 밭은 한 화방에 10여개씩 달리는데 이놈은 확실히 4개도 버거운 듯 빌빌댑니다. 사람이든 식물이든 어려서 잘 먹여야 합니다. 진짜 몸에 좋은 것으로 말이죠...


꽃대를 올리지 않고 옆으로 퍼져주는 치커리들은 쌈채가 귀한 요즘 효자입니다.


가지는 여전히 꽃을 피우고요...


이런 일반적인 모양도 있지만,


이런 몸부림을 보이는 안스러운 가지도 있습니다.


아주까리 연한 잎을 맛나게 뜯고 계시는 방아개비입니다. 등에 업고 있는 작은 놈은 새끼일까요? 아니면 조숙한 숫놈일까요?


한참동안 보았는데요, 큰 놈이 아무리 심하게 움직여도 작은 녀석이 전혀 흔들림 없이 굳건히 붙어 있네요... 혹시 원숭이과? 아니면 장벽을 넘고 역경을 이긴 사랑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