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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일기

7월 31일~8월 8일 텃밭상황 - 열무농사 실패(?)

폭염과 늦게까지 이어지고 있는 장마로 작물들도 허덕이는 듯 전반적으로 잘 자리지 못합니다.  

갓끈동부는 이런 모습이 정상인데요, 마치 갓끈을 연상시키는 듯 매우 깁니다.


그런데 중간에 이렇게 알도 차지 않고 꼬투리가 말라버리는 녀석들도 있네요. 원인은 뭘까요? 거름이 부실하거나 너무 꼬투리가 한꺼번에 많이 달렸거나 햇볕을 못 받았거나... 뭔가 이유가 있을 겁니다. 갓끈동부 꼬투리 위로 개미들이 엄청나게 돌아다니는 것으로 보아 꼬투리에서 뭔가를 빨아먹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갓끈동부를 수확하려고 꼬투리를 자를라치면 개미들이 화를 내는 듯한 느낌이 팍팍 옵니다.


감자를 캔 후 이랑 위에 감자대와 잡초 등을 모아 유기멀칭을 해 주었는데 유기멀칭한 것은 어느새 분해되어 간데없고 대신 쇠비름이 온 밭을 뒤덮었습니다. 해가 강해서 인지 쇠비름이 물기가 적고요, 바닥을 기는 지금까지의 모습과는 달리 몸을 위로 치켜세우고 있는 새로운 모습입니다. 너무 힘차다고나 할까요? 지난 번에는 밭을 기는 부드러운 쇠비름을 한 봉지 가득 뽑아가서 살짤 데쳐 조물조물 무쳐 먹었습니다. 오행초라고 매우 약효가 좋다고는 하는데 미끈거리고 자체로는 맛이 신통치 않아서 저 혼자 거의 다 먹어야 했습니다. 몸에 좋은 쇠비름을 많이 먹어치우려면 쇠비름에 맞는 요리법을 찾아야 할 듯 싶습니다.


유기멀칭 위에 직파하고 물만 뿌려서인지 상추도 달랑 3개만 싹이 텄습니다. 그래도 상추는 잘 자라는 편이고요, 자체로 쓴 맛이 나서 벌레들도 전혀 먹질 않습니다.
군데군데 심어둔 비싼(?) 쪽파들은 거름이 없어서인지 대가 매우 얇게 올라왔다가는 말라비틀어지기를 반복하고 있네요. 거름기 많은 어느 관행농가의 밭에서 자라던 파라서 그럴까요? 전혀 적응을 못하고 있습니다. 거의 한 단을 심었는데 겨우 10여개만 가늘게 대를 올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열무는 더욱 심합니다. 이렇게 벌레들의 공격을 자라는 속도로 극복하고 있는 놈은 몇 개 안되구요...


대부분은 뼈만 앙상히 남을 정도로 알뜰하게도 발라 먹혔습니다. 그나마 발아도 적어서 이번 열무는 모두 포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별 어려움없이 텃밭에서 수확을 잘 했었는데 제게 경각심을 주려는 것일까요? 이번 실패로 농사가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배추와 무 등 단맛나는 김장용 채소를 키우려면 벌레와 영양 부족 문제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겠지요.


강낭콩은 같은 자리에서 수확한 것을 다시 심은 것인데 이렇게 깔끔하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콩과식물은 땅속에서 없는 영양을 만들면서 자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런 작물들만 키운다면 놀면서도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런 작물들만 먹고는 살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참외인지, 오이인지, 박인지? 뭔지 모를 오이과 식물이 덩굴을 뻗어갑니다. 조만간 배추를 심어야 하는데 그냥 놔둬야 할지...


적근대...

치커리...

토종상추... 봄에 다른 녀석들이 번성할 때 그 그늘에서 힘을 못 펴던 얘들인데요, 힘쓰던 녀석들이 꽃대를 다 올리고 나서 없어진 요즘 텃밭에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합니다. 몇 개 남질 않아서 더욱 귀하게 느껴집니다.


토종오이는 참 잘 열립니다. 잠깐 방심하면 노각이 되어 있습니다. 매주 서너개씩 땄는데 이번에는 7개를 수확했습니다. 노각이 되건 안되건 그냥 잘라서 된장에 찍어 먹는데 향이 깊고 맛도 좋습니다.


갓끈동부도 불과 몇일이면 어느새 못보던 꼬투리들을 많이 올려 놓고 있습니다.

주렁주렁...

꼬투리가 길어서인지 제 열매를 제가 감기도 합니다. 갓끈동부 꼬투리를 모아서 들기름에 살짝 볶아 먹었습니다. 부드럽고 오동통한 것을 잘라 고추와 함께 볶았는데 씹을 때 상쾌한 즙이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맛이 좋습니다. 다만 너무 늦게 수확하면 꼬투리가 질겨서 잘 씹을 수가 없습니다.


토마토는 바람에 쓰러진 후로 맥을 못추더니 결국 말라버리네요. 대를 뽑아 잘라 밭에 뿌려 정리했습니다. 대신 곁순을 심어서 활착한 놈들을 잘 키워 보아야겠습니다.


어렵게 자랐던 방울토마토가 토마토 밭을 장악했습니다. 그래도 워낙 초기에 허덕여서인지 열매를 넉넉하게 맺지는 못합니다.


가지는 항상 쏠쏠한 재미를 주고요...


들깨, 차조기는 요즘 맛이 든 쌈채입니다. 아주까리도 무성해져서 이번에는 어린 잎들을 따다가 그대로 쌈을 싸먹어 보았습니다. 먹을만 합니다.


고구마가 죽죽 뻗네요. 고구마는 자꾸 걷어 올려 곁뿌리가 내리지 않도록 하고 순도 자꾸 잘라줘야 뿌리가 알차게 든다고 합니다. 요즘은 고구마보다 고구마순이 더 비싸다고 하네요. 고구마 순을 한웅큼 꺽어다가 대는 껍질을 벗겨 무치고 잎사귀는 버리지 않고 된장국을 끓였더니 맛이 좋았습니다. 고구마 잎으로 끓인 된장국은 꼭 근대국과 같은 느낌이네요.


갓끈동부, 토종오이, 고추, 가지, 토마토, 고구마, 들깨, 차조기, 아주까리가 자라는 텃밭쪽은 밀림 같구요...

끝물인 쌈재소 밭과 농사에 실패한 파, 열무 밭은 폐허처럼 앙상합니다. 그러나 이건 농사를 짓는 제 입장이고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벼룩벌레, 개미 등의 온갖 벌레들과 각종 잡초 싹들이 어울려 왕성하게 생명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과 내가 균형을 이루어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서는 더많은 공부와 지혜가 필요할 것입니다.


아주까리 씨앗이 다 여물었네요. 힘들어도 다음 세상은 계속 준비되어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