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텃밭일기

7월 4일 텃밭 상황 - 풍요로운 감자 수확, 그리고 또다른 도전

지난 주말에는 급히 고향에 갔다가 귀경길에 기장 공동경작팀에 늦게 합류하는 바람에 우리 텃밭을 세심히 돌아보지는 못했습니다. 졸지에 광명텃밭에 함께 오게 된 아내가 시댁 방문 차림으로 대신 우리 텃밭의 풀을 메주었답니다. 풀과의 전쟁에서는 내외가 있어서는 안됩니다.^^ 비록 구두가 빠지고 바지가 늘어나고 팔에 풀독이 오르더라도 말이죠... =3=3=3

장마 전에 감자를 캐야 한다는 말이 있어서 그날 감자를 캐려고 했었는데, 공동경작 기장밭 풀메기를 하다가 이미 날이 어두워졌고 주변에서 캐고 있는 감자를 보니 너무 알이 작아서 다음 주까지 기다려야겠다 생각했더랬습니다. 다행히 마른 장마가 끝나고 지난 주 내내 비가 많이 내려서 내심 감자 알이 굵어지겠구나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또 주말에 비가 오면 감자를 못 캐는데 하고 조바심내고 있었지요.
 
토요일 아침까지 내리던 비가 그치고 일요일 오전까지 해가 쨍쨍 내려 쬐어 땅을 말려주고 있어서 감자 캐기 정말 좋은 타이밍이라 생각하고 오전 11시에 텃밭을 향했습니다.    

갓끈동부가 1.5m 오이망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더 못 올라가고 다시 내려와서 옆의 고추지주대를 감고 오르고 있습니다. 더이상 오이망을 높여주는 것을 미뤄서는 안되겠더군요.


토종오이도 무성하게 오이망 하단을 덮었습니다. 오이망을 좀 헐겁게 걸쳐 놓았더니 자꾸 옆 밭으로 덩쿨을 뻗치고 있습니다. 내 밭의 작물도 옆 밭에는 잡초가 될 수 있습니다. 오이 순치기가 복잡하고 헷갈리던 차에 잘 되었다고 생각하고 옆 밭으로 뻗어가던 것들을 모조리 잘라버렸습니다.


고추가 많이 열렸고 큼직하게 자랐습니다. 몇 개는 매우 커서 거의 오이고추만 합니다. 꽈리 고추까지 상당한 양을 수확했습니다. 일주일은 풋고추 걱정은 안해도 될 것 같습니다.


고구마는 여전히 성장이 미진합니다. 주변에 있는 아주까리와 토마토가 너무 커서 그늘을 많이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6 그루 심어서 4 그루가 살아 남았는데 그나마 이런 상태이니 감자 수확은 차치하고 감자순이나 몇 개 갈무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들깨와 차조기도 많아 자랐습니다. 들깨는 아마 맨 위를 잘라 곁가지가 여러개 나도록 해야 할 때인 것 같은데 잘 몰라서 일단 그냥 두었습니다.


아주까리(피마자)는 2주 전에 큰 잎을 다 뜯어가서 삶아 말렸는데, 또 이렇게 무성해져서 주변 작물들을 괴롭히고 있더군요. 무성한 잎을 모두 따서 다시 데쳐 말렸습니다. 추석 쯤에 말린 것을 모아 묵나물로 맛나게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주까리 연한 잎 하나가 아작이 났습니다. 거의 잎맥만 남았습니다. 작은 것을 나누고 자신은 더 크게 공존하는 지혜로운(?) 아주까리입니다.


아주까리 꽃대와 열매입니다. 저것들이 말라서 벌어지면 안에서 알록달록 새알같은 매끈한 아주까리 씨가 생기지요. 머리기름으로 쓴다던 그 기름덩어리 씨앗들을 어릴 적 많이 가지고 놀았었는데 뭘 하고 놀았는지는 기억이 잘 안나네요. (짤짤이??)


토마토가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곁순을 질러주기는 했지만 너무 무성한 것이 이대로 두었다간 큰 방울토마토 수준이 벗어나기 힘들 것 같습니다. 크게 자란 곁가지들도 과감하게 잘라서 영양이 열매에 집중되도록 하고 시원하게 통풍도 잘 되도록 해 주었습니다.


방울토마토는 여전히 애처로운 수준입니다. 2주 전에 휘두른 낫을 피해 살아남은 유일한 방울토마토인데 주변 토마토들의 수세에 밀려 키만 날씬하게 쭉 뻗었습니다. 그래도 바닥에 빨간 열매 하나를 달고 있네요. 살기 힘드니 얼른 종족 번식에 매진하는 것 같습니다.


장마철이라 습해서인지 텃밭 그늘마다 버섯이 많습니다. 버섯은 텃밭에 해가 될까요, 득이 될까요?


다른 분들이 보면 이게 무슨 먹을 수 있는 열무냐고 기겁을 하겠지만, 맨 처음 수확했던 열무들에 비하면 매우 양호한 편입니다. 게다가 농약이나 질소 과다가 전혀 없는 자연농법의 산물로 맛과 향기도 진합니다. 구멍 하나 없이 매끈하지만 보이지 않는 농약과 질소 과다로 웃자란 관행농법의 열무보다는 구멍이 많이 났지만 맛도 좋고 영양이 풍부한 내 텃밭의 열무들에 요즘 우리 가족은 푹 빠져 있답니다. 요놈들을 대부분 뽑아서 또 열무김치를 담궜습니다. 벌써 세번째입니다.


작물이 크면서 방아개비도 토실토실해졌습니다. 이주 전에 비해 거의 4배 수준의 덩치입니다. 식물의 광합성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생태계의 단면을 보는 것 같습니다.


가지가 딱 두 개 열렸는데요, 그 중 이 녀석은 몸에 흠집은 많지만 덩치가 엄청난 것이 마치 무슨 문신한 깍두기 형님 같습니다. 집에 가져 갔더니 아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요. 콧노래를 부르며 바로 기름에 달달 볶아서 가지를 좋아하는 둘째 딸과 신음소리를 내며 먹더군요.


지난 번에 토마토 곁순을 심었던 것들은 하나도 활착을 하지 못했습니다. 대신에 혹시 고추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서 고추 곁순을 심어 놓았던 것이 이렇게 뿌리를 내렸네요. 이것이 고추를 달지 안 달지는 모르겠습니다. 두고 봐야죠.


쌈채소들은 수명을 다해가고 있습니다. 치커리 꽃대가 올라왔네요.


적근대도 꽃대를 올렸구요...


상추는 거의 나무가 되었습니다. 쌈채들은 가을까지 뜯어 먹으려면 다시 새 씨앗을 뿌려야 할 듯 합니다.


강낭콩도 거의 수확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감자밭 주변에 있다보니 무성한 감자에 치이고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에 차여 쓰러지곤 해서 결실이 좀 늦어지고 양도 적은 것 같습니다. 큰 나무 아래서는 풀들이 자라기 힘든 법이죠. 그래도 감자를 다 캐고 나면 이놈들이 제법 부각될 것입니다.


감자 수확은 처음 해보는 일이라 삽을 써야 하나 호미를 써야 하나 고민하다가 한 그루 뽑고 호미로 조심조심 깊이 아래쪽 흙을 파서 허무는 방식으로 진행하였습니다. 감자대를 하나씩 들어올릴 때마다 큼직한 감자들이 올라오는데 참으로 경이로웠습니다. 작은 씨감자 한 알이 몇 개월만에 이렇게 많은 수확을 올리는 것이 놀라웠고, 게다가 지난 주에 수확하던 다른 밭의 감자와 비교할 때 불과 일 주일 차이가 이렇게 큰 차이를 내는 것도 놀라웠습니다. 정말 오뉴월 뙤약볕이 하루가 다르다는 말을 실감하겠더군요.

무려 두 시간 가까이 뙤약볕에서 일하면서도 덥거나 피곤한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감자를 다 캔 다음에야 온 몸이 땀투성이고 엉덩이 바로 위가 매우 따가운 것을 감지하였습니다. 엉덩이 바로 위가 따가운 것은 추정해보건데 아마 윗도리가 살짝 말아올려지고 바지가 조금 내려가서 따가운 햇볕에 맨살이 장시간 노출된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평소에 전혀 노출이 안되는 매우 예민한 부분인데 그곳이 익는 것도 모르고 감자를 캤다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참 웃깁니다. 조심스럽게 캔다고 하는데도 가끔 호미에 큰 감자가 찍혀 나올 때는 나도 모르게 큰 탄식을 하기도 했습니다.


캔 감자는 2시간 정도 밭에서 그대로 말려야 썩지 않고 오래 보관할 수 있다고 합니다. 텃밭에서 말린다고 말렸지만 물기가 조금 남아 있어서 밤에 베란다에 널어 완전히 말렸습니다.

감자밭을 결산해 보면, 약 1.5평의 텃밭에 2천원 어치 씨감자 1kg을 심어 유기농 감자 20kg을 수확하였습니다. 집에 와서 저울에 잰 것입니다. 사먹는 감자는 비슷한 크기의 선별된 감자인 반면 내가 수확한 감자는 다양한 크기에 두더지와 땅강아지가 파먹은 것도 있고 북을 제대로 주지 않아서 한 쪽이 파란 감자도 있었습니다. 작은 것들은 간장 물엿에 쫄이고, 호미에 찍힌 것, 두더지와 땅강아지가 파먹은 것, 파란 것들은 칼로 파내고 다듬어서 바로 삶아 먹었습니다. 나와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이라서인지 돈을 주고 산 감자보다 더 맛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토종오이는 처음에는 열린 지도 몰랐던 것입니다. 텃밭지기님에게 왜 내 오이에는 암꽃은 없고 수꽃만 있는지 물었더니 올해 날씨가 좀 이상해서 그런 것 같다는 답변을 듣고 다시 한번 암꽃을 찾아보다가 발견한 것입니다. 크기가 중지보다 불과 2cm 정도 큰 앙증맞은 오이인데 그냥 놔두면 토종오이는 바로 노각이 된다고 해서 따왔습니다. 정확히 세로로 네 조각을 내서 한 조각씩 먹었는데 일반 오이들과 달리 맛과 향이 매우 진하게 느껴졌습니다. 다른 암꽃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다음 주에 가면 더 열려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오이망을 더 높게 쳐 주기 위해 지주대를 이중으로 연장하여 세우고 잘라온 오이망을 쒸웠습니다. 두번째 치는 오이망인지라 이번에는 팽팽하게 칠 수 있었습니다. 갓끈동부와 토종오이가 무럭무럭 자라기를 기대해 봅니다.


감자 수확하고, 오미망 높이고, 공동경작 콩밭과 기장밭에 모여 잡초 제거하고, 다시 텃밭으로 돌아와 쌈채와 과채들을 수확하고 나니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합니다.
수확을 마친 감자밭에서 새로운 도전을 해보기로 하였습니다. 감자대와 낫으로 잘라온 잡초 등 유기물들로 두껍게 이랑을 멀칭하고 그 위로 열무와 상치 등의 씨앗을 흩어 뿌리기로 직파하여 유기순환, 섞어짓기, 자연농법을 실험하는 것입니다. 원래 5년 이상의 기간을 이렇게 해야 땅심이 돌아온다지만 짧은 기간에라도 어떤 변화가 있는지 직접 체험해 보고 싶어서입니다. 잡초 제거 효과, 수분 보존 효과, 미생물 증식 및 비료 효과, 충균 공존을 통한 일정한 방제 효과 등등을 경험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열무와 상추 씨를 멀칭 위에 흩어 뿌리고 조리개로 물을 흠뻑 뿌려 주었는데도 많은 열무씨들이 물을 따라 흙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멀칭 위에 떠 있는 것이 보입니다. 그래도 많은 수가 내려간 것으로 보이니 발아는 꽤 될 것입니다. 문제는 잡초도 못 뚫고 올라오는 두꺼운 멀칭을 작물들이 뚫고 올라올지가 우선 관건입니다. 뭐 이렇게 해서 성공한 사례가 있다고 하니 한 번 시도해 보는 것입니다. 조만간 쪽파을 사다가 위를 잘라 먹고 아래 뿌리를 군데군데 심을 예정입니다. 상추과 쪽파의 충 기피 효과가 열무에 그 어떤 영향을 주지 않을까 기대하면서요.


수확을 앞두고 있는 강낭콩에 늦게나마 지주대를 세우고 북을 주었습니다. 감자가 수확된 밭에서 이제 강낭콩이 대장이 되었으니 새롭게 풍요로운 결실을 가져다 줄 것으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