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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일기

6월 19일 텃밭 상황 - 곡물과 과채 첫 수확!

장마가 시작된 뒤로 처음 가보는 텃밭입니다. 이모작 열무는 잘 자라는지, 감자는 잎이 마르고 줄기가 쓰러져서 수확해야 할 때가 되었는지, 토마토, 고추와 가지는 몇 개나 달렸는지, 차조기와 깻잎은 좀 수확할 게 있을지, 토종오이와 갓끈동부는 오이망을 좀 탔는지, 이런 저런 기대와 상상을 하며 텃밭으로 향합니다. 이런 관심은 도시농사를 시작하기 전에는 없던 새로운 것입니다. 나와 '관계를 맺은' 작물들의 발아, 생육, 결실, 고사가 온전히 내 관심의 초점 속에 다 비집고 들어와 있습니다.

텃밭에 들어선 순간 일단 숨이 턱 막힙니다. 상전벽해가 아니라 소전초해(?)가 되어 있습니다. 나보다 훨씬 높이 자라야 할 갓끈동부를 잡초들이 조기에 압도하려 하고 있습니다. 주변 몇몇 텃밭들은  아예 작물이 더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6, 7월은 풀과의 전쟁이라더니 대단하네요.
호미로 풀을 굵거나 캐보지만 긁히지도 않을 뿐더러 잡초를 캐면 작물의 뿌리까지 다치는 것 같아서 아예 낫을 휙휙 휘둘렀습니다. 잡초들이 밑둥이 잘리면서 쓰러져 자연스럽게 풀멀칭이 되는군요.
낫질하는 법을 좀더 익혀야겠습니다. 왼손으로 풀을 잡고 낫으로 벤다는 것이 왼손 새끼손가락 피부를 함께 벗겨내기도 합니다. 낫을 든 오른손으로만 손목에 스냅을 주어 풀을 순간적으로 획획 베는 것은 왼손을 다칠 염려가 없어서 좋았는데 대신 어렵사리 살린 방울토마토를 함께 베는 참상을 가져오고 말았습니다. 
모종 심고 다음 주에 가보니 어떤 짐승이 갉았던지 대가 반쯤 잘려 바닥에 쓰러진 상태였는데,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자신의 몸을 휘어 다시 위로 힘겹게 뻗어 오르고 있던 녀석입니다. 다른 토마토에는 없는 수백마리 진딧물의 괴롭힘도 이겨내며 밑둥에 작고 파란 방울토마토를 하나 달고 있는 모습이 너무 대단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반쯤 잘린 부분을 흙으로 북돋워졌던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조금 전까지도 번성한 잡초 사이에서 제법 줄기를 올린 녀석을 보고 이제는 잘 살겠구나 기뻐하고 있었는데 그만 한 순간의 부주의로 질긴 생명을 잘라버렸네요. 농업은 수탈이라는데 이건 뭐 수탈자보다 더 지독한 도살자가 된 느낌입니다.

두번째 파종한 열무도 이제 떡잎 수준을 벗어났습니다. 첫번째 파종한 열무들은 떡잎부터 구멍이 송송 뚫려있었는데 이번에는 구멍이 매우 적어서 훨씬 깨끗하고 부드러운 열무를 수확할 것 같습니다. 혹시 벼룩벌레들의 총공격을 견디며 내성을 키웠던 첫번째 열무의 잔해들을 밭에 덮어줘서 자연스럽게 천연농약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해봅니다. 그냥 상상일까요?

내 텃밭에 손님이 왔네요. 와주셔서 영광입니다~ 개비님~ 농약과 비료가 없는 자연 유기농업을 증명하는 분이십니다~

가지가 엄청나게 컸습니다. 잎 한 장이 큰 것은 내 머리통만 합니다. 가지꽃이 피었으니 조만가 가지도 열리겠지요. 보랏빛이 예쁘기도 하네요.

토마토도 거의 잡목 수준으로 자랐습니다. 스스로의 몸무게를 못 이겨 가지들이 자꾸 바닥으로 퍼져서 빵끈으로 지주대에 묶어주었습니다. 아기 주먹만한 토마토 열매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요런 깔끔한 녀석들도 있지만...

이렇게 울퉁불퉁, 온갖 공격을 견디는 녀석들이 대부분입니다. 우리 큰 딸 아기 때 처가집 텃밭에 열렸던 토마토들이 딱 이렇게 생겼었습니다. 티스푼으로 속살을 살살 긁어서 입에 떠 넣어주면 입을 오물거리며 어찌나 맛나게 쩝쩝거리며 먹던지... 그 예쁜 모습이 오버랩됩니다. 지금은 대학가서 미운 짓을 하고 다니지만 내 텃밭의 요 못난 토마토 덕분에 딸에 대한 숨막히게 좋은 기억들이 생각나서 못난 토마토도 미운 딸도 다 사랑스러워지네요~
토마토 곁순 지른 것을 그대로 몇 군데 심어보았습니다. 곁순을 질척한 진흙에 박아두면 토마토가 생명력이 강해서 뿌리가 내란다고 합니다. 그것을 옮겨심으면 모종값을 절약할 수 있고, 먼저 심은 토마토들에 이어서 곁순이 자란 토마토들에서 계속 열매를 딸 수 있으니 오래도록 토마토를 즐길 수 있겠죠. 마침 장마철이라 수분 공급은 원할할 것 같아 별로 여유가 없이 비좁지만 그래도 가장 여유 있는 곳에 곁순을 지른 것들을 심어두었습니다. 다음 주에 어떤 모습일까 벌써 궁금합니다. 내 텃밭에 또 새로운 관심 대상이 생긴 거네요. 

고추는 따먹어도 될 정도로 자란 것들이 보여서 몇 개 수확했습니다. 생애 첫 고추 수확입니다! 제가 딸만 둘이거든요.^^;

꽈리고추도 수확합니다. 몇 주 더 심었으면 쌀가루 묻혀 쪄 먹으면 맛난데 여섯 개로 그럴 수도 없고... 그냥 고추장에 찍어 먹겠습니다.

토종오이가 오이망을 타고 오르기 시작합니다. 오이 꽃대도 보입니다.

드디어 갓끈동부도 지주대를 힘차게 휘돌아 감고 있습니다. 갓끈동부는 이 정도 높이의 오이망으로는 택도 없답니다. 지주대를 연장해서 높여 주어야겠습니다. 그런데 옆 밭에선 뭐라고 할까요? 그래도 일단 높여주어야겠죠? 자식때문에 쉽게 얌체짓하고 쉽게 싸움을 벌이는 부모들 마음을 이제야 알 것 같군요. 내 딸들 때문에 얌체짓 한 적은 없지만 갓끈동부 때문에 얌체짓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옆 텃밭 분 이해 바래요~ 갓끈동부 열리면 몇 줄 드릴게요~~

완두콩은 수확을 더이상 미룰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지난 주만 해도 속이 그리 많이 차지 않았는데 오늘 보니 속이 꽉꽉 찼고 일부는 완전히 말라 누런 콩이 되어 내년 종자로도 쓸 수 있을 정도네요. 완두콩을 모두 뽑아서 콩깍지를 따 모았습니다.

불과 10알 정도 심었는데 이렇게 많이 수확되었습니다. 이름모를 어떤 분이 지주대를 세워준 것, 투명한 콩깍지가 주렁주렁 달렸을 때의 그 아름답던 모습, 바람에 자꾸 쓰러진 것을 여러 번 세워주었던 것 등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갑니다.

옆채류는 장마철을 맞아 더욱 많이 수확했습니다. 씽크대를 가득 채우네요. 텃밭을 하면 이웃과 친해진다는데 주변과 나눠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