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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비평

'수준차반,' 영어교육의 해결책일 수 없다.

'수준차반' 영어수업으로 영어교육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이명박 당선인 시절의 발언이 있었다. 이미 이전 정부에서 거의 강제적으로 추진되던 수준별 교육과정, 수준별 수업들인지라 전혀 새롭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해결책이 될 수도 없고 해결책으로 추진되어서도 안된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사실 동질적(=수준별) 학급 편성과 이질적 학급편성, 수준별 수업과 협동학습의 논쟁은 거의 70년이 넘게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인에게 다소 생소할 정도로 협동학습이나 이질적 집단편성의 교육적 효과나 개념이 알려지지 않았고 오로지 우열반이나 수준별 편성만 일방적으로 전달되다보니 마치 이것이 상식인 것처럼 되었는데, 협동학습이 그렇게 급속하게 확산된 이유는 수준별보다 성취도가 높기 때문이고 현재도 쌍방의 논의가 팽팽하다는 객관적인 객관적인 견지에서 보면 이건 매우 잘못된 것이다.

필자가 영어교사 연수로 캐나다의 한 교육구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교장을 하다가 장학관이 된 분이 직접 우리에게 협동학습을 시연하면서(우리나라 교육관료들 같으면 꿈도 못 꿀 일이다!) 경쟁이나 수준차에 기반한 학급 편성을 하지 않고 협동학습을 교육구 전체적으로 실행하고 있다고 매우 자랑스럽게 말하던 기억이 난다. 피사 학업성취도 비교에서 1위를 달리는 핀란드의 경우에도 경쟁이나 수준별 학급편성은 없고 이질적 학급편성을 통한 협동학습을 매우 중시한다.

핀란드 영어 성취도의 비밀은 학생들이 개인적으로 원하는 외국어를 먼저 선택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공부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 할 수 있으며(과목수가 적고 여유 있는 교육과정, 사교육 부재 등), 경쟁, 입시, 오류에 대한 인내심 부족 분위기 등으로 인한 강박관념이나 스트레스 없이 영어를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가 주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모든 면에서 이와 반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자기 적성에 영어가 맞지 않거나 아직 공부할 준비가 안된 경우에도 영어는 철저히 강요되고 있으며, 입시나 사교육, 많은 과목과 학습량 등으로 하고 싶은 공부에 좀더 집중할 시간이 없다. 발음과 표현, 문법 등 극히 일부 미국 영어의 기준에 맞춰 조금만 다르거나 사소한 실수가 있어도 사방에서 태클이 들어오기 때문에 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말문이 잘 떨어지지 않아서 스스로 발화 기회를 차단하고 자기 모니터하느라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이다.

수준차반이라는 것은 편성과정에서부터 스트레스와 강박관념을 갖게한다. 게다가 편성을 할 때 듣기 말하기로 하지 않고(아직 말하기 평가의 객관성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지필평가 중심의 학교 성적으로 하기 때문에 애초에 말하기 듣기 중심의 학급 편성도 될 수 없다. 학생들에게 흥미와 관심을 주고, 하고자 하는 의욕과 재미를 주며, 스트레스와 강박관념 없이 실수를 즐기며, 입시가 아닌 영어 공부하는 재미에 스스로 시간을 더 투자할 수 있는 분위기를 결코 만들지 못한다. 새 정부의 희망과 달리 수준차반은 본질적으로 영어 공부를 망치는데 기여하고 있다.

학습효과 측면에서 보더라도 토론이나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것을 통해서 학습하는 것이 강의식 수업이나 멀티미디어 활용 수업, 심지어 직접 해보면서 몸으로 배우는 수업보다 월등하다. 수준별 수업은 애초에 과다한 학습량을 빨리 전달하기 위한 데에 초점이 맞춰 있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가능한 많은 차이를 가진 이질적 반에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관점의 토론이나, 학습 부진아를 가르쳐주면서 어려운 개념을 내재화하고 기억력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우수한 학생들이 얻는 효과들을 근본적으로 차단한다.

게다가 실제로 현재 거의 강제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수준별 학습은  영어로 영어수업처럼 대체로 편법적 운영이 많다. 수준이 가장 많이 벌어지는 3학년보다 수준차가 가장 적은 1학년에서 이루어지며, 하반으로 편성된 학급의 수업은 거의 아무런 대책이 없다. 사교육이야 원하는 사람이 자기 돈 내고 선택하는 것이니 문제가 있으면 안가면 그만이지만 공교육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요즘 사교육 시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이런 전반적인 시야와 성찰 없이 수준별 수업을 사교육의 공교육에 대한 우월성으로 내세우고 있으니 참으로 어이 없고 가소롭다. 공교육이 무너지던 말던 경쟁과 입시를 강화해야 사교육이 번창한다는 것을 오히려 솔직히 고백한다면 좋겠다.

필자는 협동학습이 우리 교육의 대안이라고 생각하지만 수준별 수업에 비해 협동학습이 절대적으로 낫다고는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각각의 입장에 선 정말 많은 논문과 리서치 결과들을 읽어본다면 둘 중의 하나를 절대시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무식한 돌진으로밖에 볼 수 없다.

이명박 정부들어 수준차반을 더욱 억지로 밀어붙이면 수준별 수업의 폐해가 얼마나 극에 달할까 걱정이다. 벌써 학원이 들썩거리고 사교육 학원장들의 수준별 목소리가 높아지고 알아서 기는 교육감들과 관료들의 서슬이 퍼렇다. 성취도는 더 떨어지고 아이들의 흥미없는 공부 노동과 경쟁은 더 극에 달할 것이며, 즐겁게 영어를 말하고 공부하며 자신감을 키우는 진짜 학습은 멀어질 것이다. 그리고는 경쟁이 부족하고 수준이 맞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면서 더욱 더 심한 또다른 경쟁기제를 도입할 것이다. 영어 조기 교육을 앞당기고 학교 영어시간을 늘리고 영어 몰입교육을 도입하는 등의 양적인 문제 해결처럼 말이다.

교사 입장에서 보더라도 협동학습을 통해 눈부신 성과를 내는 교사들이 광범위하다. 그들의 신명과 의욕을 근본적으로 차단할 것인가? 지엽적인 학습집단 편성의 한 방식, 다기한 수업 방식 중에서 극히 편협한 일부 방식을 모든 공교육 현장에 독재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공교육말살에 다름 아니다. 보다 다양한 경험, 다양하고 창의적인 능력 개발을 근본적으로 차단할 뿐이다. 제발 공교육 현장의 교사들이 자신이 원하고 자신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수업하게 좀 놔두었으면 좋겠다. 제발 학생들이 경쟁과 공부 노동 없이 즐겁게 협동하고 스스로 다양한 공부에 몰입하면서 진정한 학업성취도를 높이는 분위기와 구조를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지금 공교육 현장에 절실히 요구되는 질적 변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