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청룡산 오르는 길에는 모퉁이마다 누군가가 깻잎, 고추, 토마토, 상치 등을 심어 가꾸는 작은 텃밭들이 빼곡하다. 한 뼘 남짓한 공간만 있어도 돌멩이로 가장자리 두르고 고추 한두 모종이라도 심어 키운다. 도시 한 가운데서도 잊지 못하는 대지에 대한 애착일까?
여러 텃밭들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띠는 것은 구획을 나눠 종류별로 채소를 심은 밭이 아닌 여러 채소들을 촘촘히 섞어 심은 밭이었다. 작은 텃밭이라 한 그루라도 더 심으려면 촘촘히 심을 수밖에 없는데, 같은 종류를 그렇게 빽빽하게 심으면 필시 병충해가 심하게 발생하고 햇볕을 넉넉히 받지도 못하니 잘 자라지도 못한다. 이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인의 지혜가 아니었을까? 이 채소는 이 병충해에 강하고 저 채소는 저 병충해에 강하다면 이것들을 섞어 심으면 서로의 내성에 의존하며 농약 없이도 병충해를 이길 수 있을 것이고, 햇볕이 많이 필요한 채소와 덜 필요한 채소를 섞어 놓으면 촘촘해도 각자 필요한 만큼의 햇볕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또 그 텃밭을 보니 한 켠에 봉숭아 꽃이 예쁘게도 피어 있다. 채소만 심기도 비좁은 땅떼기에 봉숭아를 심은 이유는 무엇일까? 손녀딸 손톱 발톱에 예쁜 봉숭아물을 들여주고 싶었을까? 먹을 것을 키우는 노동의 와중에 아름다움의 여유를 맛보고 싶었을까? 지나치는 사람들을 배려하고 싶었을까?
우리 아이들을 입시 지옥에 빠뜨리며, 남을 배려하거나 내적, 외적 아름다움을 추구할 여유도 없이, 분리와 배제를 강요하며 오로지 경쟁을 부추기는 어른들로 인해 우리 아이들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무한정 병들고 약해져간다.
아이들의 건강과 살맛나는 행복한 사회의 진정한 경쟁력을 위해서는 더불어 함께 살며 배려하고 협동하는 생활의 복원이 매우 시급하다. 이 천박한 사회가 진정으로 배워야 할 텃밭의 교훈이 아닐까?
살며 사랑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