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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내시경 검사를 받으며 미리 체험한 공공의료 민영화의 장래

직장 정기 검진으로 위 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두터운 쇳덩어리 파이프가 내장을 헤집을 때 받게 될 고통과 혹시 모를 질병에 대한 가능성으로 불안과 초조에 휩싸이기 마련이다.

내시경 차례를 기다리는데, 접수하는 간호사의 불친절하고 기계적인 말투가 매우 거슬린다.
'좀 친절하고 정성을 담아 말하면 훨씬 안정이 될텐데...'

바로 앞에 할아버지 한 분이 내시경을 받으러 왔다고 퇴짜를 맞는 중이다.
"할아버지, 이 흔들리는 것 없으세요? 아~ 해보세요."
휴지를 꺼내더니 이빨에 대고 손으로 흔들어 본다.
"이빨이 흔들리네요. 수면내시경은 안되니까요, 일반 내시경 하시던지, 아니면 엑스레이 촬영하세요."
"아니 왜 안돼? 그냥 해 줘."
"안되요. 이빨이 빠질 수도 있어요. 우리가 책임 못지거든요."
난감해진 할아버지가 몇 번 항의해보지만 돌아오는 답은 반복적일 뿐이다. 결국 할아버지는 내시경을 못 받고 발을 돌리셨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아니 자신들이 검사하기 편리한 환자를 선택해서 받나? 건강하고 멀쩡한 사람이 왜 내시경을 받을까. 수만명을 내시경 검사하면서 그런 노우하우 하나 없이 쉽게 돈벌 수 있는 환자만 받아 왔나? 이건 환자가 중심이 아니라 자신들의 편안하고 손실없는 돈벌이가 중심이 아닌가? 건강보험료 멀쩡하게 다 내고도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나?'
'아니 그리고 얼마나 심하게 함부로 쑤셔대면 약간 흔들리는 정도인 멀쩡한 이빨이 다 부러질 정도일까? 그래서 위 내시경 중 위장이 뚫리는 사고가 있는건가?'
매정하게 퇴짜 맞는 할아버지의 속절 없는 모습에 불안감은 더욱 커진다.

마취되어 못 깨어난 사람, 위가 뚫린 사람, 내시경 중에 소독이 제대로 안 된 기구로 감염된 사람 등이 있다는데 괜찮을까? 만성 위염으로 벌써 여러 번 내시경을 해본 경험이 있지만 내시경을 기다리는 시간은 정말 힘들다. 불안해서 편안한 수면내시경도 할 수가 없다.

약을 삼키고, 목에 마취약을 뿌리고, 입에 구멍뚫린 플라스틱 보호대 물고 있으니, 남자 의사(?)가 와서 "내가 할게." 하더니 부억에서 쓰는 1회용 비닐 장갑을 끼더니 자기 옷에 막 문지른다. 무슨 돼지 잡으려는 폼세다.
'이 자식 이거 더럽게 아무데나 만지고 저 손으로 또 내 위장에 들어갈 기구 만지는 거 아니야?'
짜증이 더 난다.

이내 기구가 푹 입안으로 들어오면서 엄청난 고통이 수반된다. 웩웩~
"잘 참으시네요. 잘 하시네요." 간호사가 옆에서 격려를 하였다.

여기까진 좋았는데, 갑자기 사진을 찍으려는지 바람을 급하게 넣는다. 너무 고통스러워 웩 했더니
"조금만 참으세요."
하며 바람을 한번 더 넣는다. 다시 웩~! 이때 바로 날아드는 간호사의 짜증섞인 질책!
"이러시면 안되요! 내시경 못 해요!"

갑자기 화가 난다. 아니 내가 지금 웩웩거리고 싶어서 그러나? 조심스럽게 천천히 하면 될 것을 부드럽게 하지 않으니 그런 것 아닌가? 단 2번 웩웩 했다고 이런 구박을 주나? 바로 일어나서 따지고 싶으나 그럴 수가 없다. 침과 눈물 범벅으로 정신이 없고 무엇보다 배속에 쇳막대기가 꽂혀있기 때문에... 2번 우웩거리니 그제사 조금 조심스럽게 시도한다. 생각보다 빨리 내시경이 끝났다. 기술이 좋아진건가? 건성으로 해서 그럴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대기석에 가니 부장님이 앉아 있다. 수면내시경을 해서인지 여전히 어지럽다고 하신다.
의사가 부장님을 불러 촬영한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을 하고 치료 방법에 대해 안내를 한다.

그런데 대기석에서 동그란 혹이 발견된 선명한 사진도 다 보이고 의사 말도 다 들린다.
"7mm나 되는 게 생겼네요. 조직검사 할거구요, 다음 주에 결과 보러 오세요. 너무 걱정은 마시구요."
그 날 부장님의 속을 완전히 다 보고 말았다.
'이 우라질 병원은 무슨 프라이버시도 안 지켜주나?'
좀 어이가 없다.

다행히 내 위장은 별 문제가 없단다. 위염이 약간 있으니 약을 지어 주겠다고 권하지만 안 먹겠다고 했다. 그동안 숱하게 먹었던 엄청난 양의 위장약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별 효과도 없었고 다 먹을 수도 없어서 대부분 박스째 그냥 버린 적도 있다.

내시경 검사를 무사히 마쳤고 별 문제도 발견되지 않아 홀가분한 마음에 기분이 좋았는데, 위장의 마취약 기운이 사라진 오후부터는 위장에 상당한 통증이 계속되니 좀 불안하고 기분도 엉망이다. 이틀이 지나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목구멍이 칼칼하고 속이 거북하고 얼얼하다.
'도대체 얼마나 마구 헤집었으면 내시경 끝난지 한참 되었는데도 아직도 아프냐? 이거 내시경 기구에 감염된 건 아닌가? 괜히 내시경 해서 위장에 상처난 것은 아닌가?'
온갖 생각에 어지럽다.

내가 처음 내시경 검사를 받은 것은 스트레스로 위장병이 발병한 10여년전 동네 내과에서였다. 당시 그 의사 선생님은 정말 친절하고 자기 병인 것처럼 진지하게 상담해주었고, 약도 무더기로 주지 않았다. 내시경도 본인께서 직접 하셨는데 어찌나 섬세하게 하던지 거의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이에 비하면 종합검진센터로 등록된 상당한 규모의 병원에서 받는 종합 검진은 너무 형식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줄줄이 서서 대기하는 사람들이 다 돈덩어리나 무슨 상품으로 보이는지 무성의하게 마구잡이로 처리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오로지 빨리 빨리 처리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정성껏 다루어야 할 환자들의 인권이나 고통은 안중에도 없다. 빨리 빨리 무성의하고 부주의하게 하다보니 검진 결과가 서로 바뀌거나 내시경 같은 매우 민감한 검진도 대충대충 거칠게 환자가 고통을 받던말던 마구잡이로 처리해댄다.

위장병으로 우리나라에서 최고 유명한 대학병원까지 가 보았으나 불친절도는 유명세에 비례했다. 환자인 나에게 병의 원인을 묻고 잘 모르겠다고 하면 화를 내며 다그쳤다. 당시 느낌으로는 그 의사가 환자(정신병) 같고 내가 의사(위장병) 같았다. 엑스레이를 찍을 때 자신은 후다닥 방 밖으로 뛰어 나가 벽 뒤에 숨으면서 박수를 팍팍 치며 "자~ 다음 분~!"하며 무슨 남대문 상가에서는 볼 수 있는 풍경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연출하는 사람들도 보았다.

종합검진이건 아니건 모두가 결국 내 돈 내고 받는 의료서비스인데 왜 이렇게 엉망인지 모르겠다. 다 그렇진 않지만 대체로 의사로서 전문성에 기반한 직업의식은 커녕 인간으로서 기초적인 도덕 개념도 매우 희박하다는 생각이 든다.

똑같은 병원이라도 의사 면담시 1만원 정도를 더 내면 담당 의사가 훨씬 친절해진다. 보험이 되지 않는 80만원짜리, 100만원짜리 건강검진을 받으면 정말 친절하고 자상하게 해준다고 한다. 보험료, 의료비 다 내고도 정당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한다. 돈이 없으면 아프지 말거나, 험악하고 무성의한 시정잡배같은 의료진에게 모욕을 당해야 하거나, 문전박대 당한다.

지금도 이러한데 앞으로 의료보험 민영화가 더욱 진행되면 어떻게 될지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하다. 차라리 내돈내고 건강검진 받으며 불안하고 속을 끓이고 기분 나빠지느니 그냥 보험이고 뭐고 다 때려 치우고 되는대로 살다가 가는 것이 훨씬 나을 것 같다.

나는 의료서비스는 국가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할 공공서비스라고 생각한다. 현재와 같이 상업화되고 경쟁이 심해지면 갑부들은 돈으로 멋진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만 대다수 국민은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게 된다. 아프고 병들면 불쌍한 것은 돈이 있는 사람이건 없는 사람이건 다 같다. 돈 벌기 싫은 사람은 없다. 다만 여러가지 사회적 장치에 의해 분배가 불평등하게 되고 있을 뿐이다. 의료 서비스가 나쁘면 국가적 차원에서 함께 풀어야 할 일이지, 돈 많은 사람들만 양질의 서비스를 받고 일반 국민들은 저질 의료 서비스에 방치하는 것은 천박한 발상일 뿐이다.

캐나다의 경우 Tommy Clement Douglas(1904~1986)라는 이름의 주지사가 무상의료를 추진하여 병과 죽음 앞에서 빈부지위 차이를 막론하고 차별받지 않고 동질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그는 현재 가장 훌륭한 캐나다인으로 존경받고 있다. (관련자료 -> http://kr.blog.yahoo.com/speteron/894146)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정치인 한 명쯤 기대해 보는 것이 어리석은 일일까? 부자들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쥬를 기대하는 것처럼?

요즘 의료 생협(?)같은 새로운 대안적 의료 공동체도 생겼다는데, 우리 동네 만들어지면 바로 가입하고 싶다. 우리가 내는 각종 건강 관련 보험료만 모아도 아마 평생 무상의료 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