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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영어...

영어로만 영어수업? No! Code Switching? Yes!

'10년 공부하고도 영어 한 마디 못한다'는 비과학적인 질타가 높아질 때마다 영어교사에 대한 책임전가와 함께 영어로 영어수업을 하라는 요구가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갑자기 영어교육의 모든 문제가 영어로 영어수업을 안 해서 생긴 것처럼 혹세무민한다. 과학적 근거와 전문성에 기반한 정책 마련과는 담을 쌓고 그저 보여주기식 실적에 기대려는 정치적, 관료적 행태들은 급기야 영어로만 영어수업을 일주일에 몇 시간 이상 꼭 해야 한다고 강제하려 한다. 이쯤 되면 영어교사의 자주성이나 교육적 전문성은 없다.

영어시간에 매개 언어를 영어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우리나라와 같은 상황에서는 영어 입력과 영어 사용에 대한 필요성을 인위적으로 증대할 필요가 있고 영어시간에 영어로 수업하는 것이 그 방안이 될 거라고 한다.

그러나 모든 입력이 학생들의 영어능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해가능한 입력(comprehensible input)만이 효과가 있다는 것은 영어교육에서 거의 정설에 가깝다. 초등학교는 물론 중고등학교에서도 수업을 매개하는 영어는 학생들이 실제로 배워야 할 목표 요목보다 훨씬 어렵다. 매개 언어를 쉽게 사용하면 되지 않느냐는 말을 할 수 있겠지만 그런 자유로운 paraphrasing은 원어민조차도 몹시 어려워하는 부분이다. 실제로 원어민의 영어시간에 한국인 영어교사가 들어가서 하는 일이 주로 쉬운 영어로 설명하거나 우리말로 통역해주는 것이다. 결국 어려운 매개언어는 학생들의 영어 능력 향상에도 전혀 도움이 안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수업의 흐름을 차단하고 목표 요목에 대한 이해를 떨어뜨리며 대다수 학생들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런 차원에서 이제 영어로만 영어수업의 대안으로 Code Switching이 떠오르고 있다. 사실 이것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고, 언어를 새로 배우거나 두 가지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상황이 바뀌면 바뀐 상황에 가장 적절한 언어로 즉각적으로 바꿔 사용하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영어 교사들은 영어시간에 자연스럽게 이 Code Switching을 사용해 수업을 해 왔다. 다만 이해가능한 영어 입력을 의도적으로 늘리지 못한 점이 한계인데, 이는 영어교사의 문제라기보다 빠듯한 진도와 수업 준비를 할 수 없게 만드는 과다한 잡무, 수준차가 큰 학생들로 이루어진 40명 전후의 과밀학급, 입시와 문법 번역식 수업을 강제하는 제반 여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영어 학습 방법의 확산보다는 보여주기식 실적 쌓기식 연구 수업 관행을 추진하고 부추겨온 교육 당국의 비전문적이고 관료적인 장학 행태가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할 일이라고 본다.

사실 영어로 영어 수업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형식적인 부분이 논란의 초점이 되어서는 안된다. 학생과 수업 환경 및 요목에 대한 방법의 적합성은 영어교육에 대한 독보적인 현장전문성을 가진 영어교사가 가장 잘 앎으로 전적으로 영어교사에게 매개언어의 사용 및 그 정도를 결정하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 초점이 되어야 할 부분은 어떻게 목표 요목에 대한 학습 효과를 높이고 이해가능한 입력을 늘리며 학생들의 활동 참여와 발화를 촉진할 것인가이다.

영어 수업을 매개하는 언어로 영어보다는 모국어를 사용해야 효과적인 경우로서 다음과 같은 상황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수업 매개 언어가 수업 목표 언어보다 어려운 경우이다. 수업 매개 언어가 어려우면 수업 목표 요목에 집중할 수 없고 초점이 자꾸 흐려지게 되고 이해가 되지 않는 가운데 속절없이 시간만 낭비하게 된다. 학생들이 배운 적이 없는 문장이나 표현들을 매개언어로 사용할 경우 새로 도입하는 절대량을 학생들이 수용 가능한 수준으로 조절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상황에 따라 우리말 설명이나 안내가 필요하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결국 모국어를 적절하게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수업 매개 언어가 이미 학습한 내용이건 아니건, 또는 수업 매개 언어가 목표 요목보다 어렵건 쉽든간에 학생들이 매개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 수업 진행이 어렵고 수업의 흐름이 끊어지게 된다. 이 경우 교사는 간단한 우리말을 순발력 있게 사용하여 학생들의 이해를 도우면서 동시에 끊김없이 수업의 흐름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세째, 복잡한 절차, 문법, 추상적인 내용 등을 제시, 설명할 경우인데, 이와 같은 사항들을 영어로만 하는 것은 그 자체로 불가능한 경우가 많고,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영어교사에게 과중한 준비 부담을 주며 아울러 학생들이 이해 가능하게 하기까지 지나치게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beautiful'의 의미를 영어로 설명하기 위해서 온갖 몸짓 발짓을 할 것이 아니라 우리말로 '아름답다'라고 기민하게 한 마디 해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네째, 수업 운영 상 규율의 적용, 분위기 조성 등이 필요한 경우이다. 요즘처럼 학생들이 교사 말을 안 듣는 경우가 없을 정도로 수업 중 질서 유지는 힘든 상황인데, 이 와중에 계속해서 영어로 지시를 하거나 주의를 주는 것은 자칫 상황을 희극적으로 만들면서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교사가 화가 났다는 것을 학생들이 빨리 알게 하고자 할 경우와 같이 규율이 심각하게 필요한 경우 우리말의 효과에 기대는 것이 좋다.

다섯째, 영어로 진행하면 많은 아이들이 수업 활동 참여에 부담을 느끼고 발화를 꺼리게 되어 오히려 연습량을 줄이고 자신감도 잃게 되는 경우가 많다. 전술한대로 학생들의 활동을 촉진하고 참여와 발화를 높이는 것이 수업의 목표인만큼 이를 위해서는 항상 모국어를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이 모국어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는 구체적인 수업 상황에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Code Switching의 목적은 영어로 영어수업을 기반으로 모국어를 사용하되 그것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할 것인가, 즉 어떻게 학생들의 활동을 촉진하고 영어 발화 기회를 높이며, 어떻게 학생들의 영어 사용을 확대하고 자주적으로 영어를 사용하고자 하는 의욕을 북돋을 것인가이다.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몇 가지 Code Switching의 원칙을 생각해 볼 수 있다.
1. 학생들이 이해 가능한 수준의 영어(=약간 어려운 정도의 영어 표현도 포함)를 사용한다.
2. 새로운 표현은 반복하여 사용하며 익숙하게 한다.
3. 영어 사용을 한꺼번에 늘리지 않도 조금씩 늘려 나가되 학생들의 자신감이나 의욕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유의한다.
4. 모국어 -> 모국어+영어 -> 영어 순으로 학생들이 차근차근 익숙해지게 한다.
5. 수업의 흐름을 막거나 활동에 장애가 되는 경우 등 모국어 사용이 필요한 경우 기민하게 모국어를 사용한다.

교사가 효과적이고 원칙에 입각하여 Code Switching을 활용하게 되면, 이해 가능한 입력이 오히려 늘어나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매개언어는 줄어들게 되어 학생들의 영어 능력이 자연스럽게 향상되며, 과정과 방법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자신감을 가지고 참여를 할 수 있게 되어 연습량이 늘고 수업에 대한 이해력이 증진되어 수업 효과와 성취도가 높아진다. 아울러 영어시간에 대책 없이 소외되는 아이들이 적어지고, 학생들의 참여와 발화를 촉진하며, 영어시간에 대한 부담은 물론 영어 사용에 대한 부담도 줄일 수 있고, 교사 입장에서도 영어로 영어 수업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수업의 흐름을 유지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엄청난 장점을 가진 Code Switching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영어와 모국어를 동시에 잘 하는 바로 우리 영어교사들만이 가능하다. 이 점에서 우리 영어교사들은 원어민들이 매우 부러워하면서도 도저히 넘보지 못하는 소중한 자산을 가진 셈이다. 이제 올바르지도 과학적이지도 않은 영어로만 영어수업으로 오히려 강점이 많은 우리 bilinguist 영어교사를 모욕하거나 이런 모욕을 그냥 수용하는 일이 더 진행되어서는 안된다. 영어로 영어수업의 개념을 다시 정립하고 당당하게 Code Switching을 활용하자! 그것이 우리 영어수업을 진정으로 개선할 희망이다.